[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93. 원작 에쿠우스를 진지한 웃음으로 패러디 하고 놀이로 비트는 이철희 연출 ‘닭쿠우스’

Է:2019-11-12 11:31
:2019-11-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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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구이는 후라이드를 낳고 후라이드는 양념을 낳고, 양념은 간장, 간장은 파닭으로 파닭은 볼케이노를 낳았도다. 림스는 멕시칸을, 멕시칸은 페리카나를 낳고 페리카나는 이서방을 낳고 이서방은 since1989, 스머프양념도 1989. 처갓집 라인은 비비큐와 둘둘. 둘둘을 낳았도다.” “여보세요. 네네. 네. 네네.” “네네 치킨을 지나 닭의명품 프라닭, 스포츠닭 다디닭스, 닭중의 닭 스타 스타닭스. 그리고 이 모든 닭 위의 닭. 닭을 다스리는 닭쿠우스!!”
배우 이기돈이 극중 인물 ‘알란’으로 분해 입맛당기는 치킨 양념장처럼 프랜차이즈 역사를 치킨광고패러디로 날리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진다. ‘네네 치킨’을 연상하게 하는 대화 장면에서는 ‘닭쿠우스’ 작가이자 연출 이철희가 장면을 단어의 동음이어로 연결시키는 속도감에 시선은 무대로 고정되고 웃음은 릴레이로 “빵” 터진다. 어설픈 영어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부터 ‘웃음’으로 돌격하며 관객은 무장해제 된다.

광고를 연상하게 하는 “장에 딱 좋아, 장에 딱 좋아”하며 웃음으로 진지하게 비틀어대는 패러디의 타이밍과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충정도 사투리 연기는 웃음조미료다. 놀이로 돌진하며 그 기발함으로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말의 세계 ‘에쿠우스’를 닭들의 이야기 ‘닭쿠우스’(10,24~11,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의 패러디로 전복시킨다. 원작의 무게감을 웃음으로 다이어트 하는데도 무게감을 이탈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진지한 역할 놀이로 무대를 종횡무진 웃음으로 달리며 원작을 비튼다. 극단 <코너스톤>의 ‘닭쿠우스’는 작가이자 연출, 배우로 3종철인 경기를 석권한 선수처럼 특정 분야를 허물며 달리고 있는 이철희 작품으로 충정도 연극 시리즈 2탄이다. 1탄 전작은 제 4회 ‘벽산희곡상’(2014)을 수상한 ‘조치원해문이’로 작가 등단을 알렸다. 이듬해 이 작품이 국립극단에서 공연되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비극성은 땅 투기가 들썩거리는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일대 마을로 옮겨져 개발 붐으로 균열되어가는 살인과 권력욕망, 복수와 음모, 물신주의 탐욕들이 너덜거리는 현실풍경을 진지한 웃음으로 조롱하고 날카롭게 풍자시키며 이철희를 알렸다.

이철희의 충청도 언어와 패러디

충청도가 고향인 이철희에게 삶의 정서가 꿈틀거리는 ‘언어’가 ‘무대언어’로 환치(換置)되면서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배경은 자연스럽게 충청도의 한 마을이 되고 극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생명력은 능청스러우면서도 날카로움이 베여있는 이철희 연극언어의 리듬으로 변주된다. 특히 충청도 언어를 쓰는 극중 인물로 분할 때(해문이) 이철희의 연기는 몸과 언어의 감각이 날것의 본능으로 움직여진다. ‘닭쿠우스’도 원작 ‘에쿠우스’의 장면과 인물을 연상할 수 있는 골격을 유지하면서 메타연극을 표방하고 있다. 극중 장면은 배우들의 놀이로 패러디는 구현되고 극적 환상의 경계를 이탈한다. ‘원작을 패러디한 가상의 이야기로 대본대로 흘러 간다’거나 ‘감정이입과 극의환영’을 차단하며 역할놀이를 통해 연극 ‘닭쿠우스’는 재구성된다. 원작은 말(馬) 6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알런 스트랑’의 정신분열을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가 충격적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 소년의 내면과 자아, 정신세계를 분석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닭쿠우스는 극중 인물 알란(이기돈 분)이 양계장 닭 6마리의 좁은 눈을 찌르고 오직 ‘너게트’라는 닭만을 포옹하고 사랑하며 닭을 숭배하게 된 알란으로 비트는 식이다. 원작의 인물이름 패러디도 웃음으로 무장된다. 웃을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가 총 출동된다. 알을 깨고 일어서는 닭들의 닭 ‘닭쿠우스’ 숭배한다고 해서 주인공 소년은 ‘알란’으로, 싸움을 ‘다이다이’로 붙은 전력으로 정신과 의사는 다이다이 박사다. 홍성의 한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 하스타(김태훈 분)가 마을 양계장에서 엄지와 검지로 좁은 닭의 눈을 찌른 충격적인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원작은 소년을 중심으로 말의 눈을 찌른 정진분열의 내면을 분석하고 추적하지만 웃음으로 무장된 닭쿠우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안전한 내면의 인간들이다.


복장도착증환자인 아빠, 이단종교를 숭배하는 광신도 엄마, 양계장을 관리하며 불법 운영을 묵인하는 듯한 공무뭔(하스타), 환락의 욕망을 파는 메리조이(최주연 분) 등이 있다. 연극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역사를 줄줄 외우며 닭을 숭배하게 된 알란을 쫓아가면서도 메리조나를 통해 환락의 욕망을 파는 양계장의 뒤 섞여진 비밀들이 들어나면서 극의 종점에서 알란은 다이다이박사 눈을 찌른다. 정신과 의사 다이다이 박사도 한 소년의 이상행동과 정신 분열을 치료하지 못하고 인간욕망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함으로 묘사되고 알란은 너게뜨 닭만을 사랑하는 소년처럼 다이다이 박사의 내면을 감싸 안는 것으로 끝난다. 알란이 닭의 눈을 찌른 비밀을 눈치 챌 때 까지 ‘닭쿠우스’는 웃음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장면을 만들고 전진한다.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인물은 알란의 행동을 비정상의 균열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가족, 메이조이, 다이다이, 하스타)들이다. 패러디는 원작의 인물설정과는 다르게 전복된다. 원작 에쿠우스에서 다이사트는 닭쿠우스에서 알란으로 인물의 내면 설정을 뒤집는 식이다.

무대 입구부터 웃음으로 달리는 ‘닭쿠우스’

극장은 충남 홍성의 한 마을이 된다. 배우들은 연극에 감정이입과 극적 환영을 차단하거나 경계를 허물며 ‘닭쿠우스’는 ‘에쿠우스’를 패러디한 연극이며, 작가가 쓴 이야기를 배우 놀이를 통한 이야기가 전개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관객은 무대를 열린 공간으로 참여하게 된다. 역할놀이를 하듯 배우들은 패러디 놀이공간이 되는 무대 안쪽과 좌, 우로 등·퇴장을 반복하며 장면을 놀이로 재현하며 극중 인물과 배우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특정 장면에서는 배우들 연습공간으로 전환되며 극중 인물 이전의 ‘배우로 돌아가거나’ 놀이로 변주되는 패러디연극임을 환기시키는 식이다. 도입부터 웃음이 터진다. 무대 공간을 닭 날개 형상을 하는 커튼으로 이원화 하고 앞으로는 허름한 의자들과 탁자가 있다.

다이다이박사가 맥도날드 페이퍼백을 들고 들어와 햄버거를 먹고는 휴지를 종이 백에 골인 시키며 “연극은 이걸 넣어야 시작되유” 라며 초반부터 웃음을 터트리고 장면은 전환된다. 청 반바지를 입고 뒤집힌 속주머니를 달고 있는 알란은 마치 닭 숭배자로 외형을 형상화 하거나 사대부들이 쓰던 정자관을 머리에 두르고 두루마기를 착용한 부원(김효영 분)은 닭을 희화화 한다. 알란이 닭 눈을 찌른 사건이 일어난 홍성의 한 마을에서 ‘정부미’만을 먹고사는 마을 면사무소 공무원인 초등학교 동창 하스타 부탁으로 알란 사건을 다이다이가 맡게 되면서 극은 릴레이로 웃음을 달고 놀이로 돌진한다.

소년(알란) 집을 방문한 다이다이 박사가 “이름이 워케 되는가” 하는 질문에 소년은 “쾌변에 딱 좋아, 장 건강에 딱 좋아”를 외치고 닭의 눈을 찌른 소년을 만나면서 다이다이 박사는 치킨을 선사하는 닭들이 꿈에 나타날 정도로 알란의 분열적 행동들이 초반부터 유쾌하게 파헤쳐 진다. 원작에서는 무신론자이자 영화관에서 일탈적 성적욕망을 들어내고 있는 아버지(김문식 분) 는 성도착증 환자로 마주하게 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정순미 분)은 이단종교에 빠져 정신분열을 보이고 있는 한 인간으로 패러디된다. 치킨 패스트푸드점 역사를 줄줄 외우고 닭 뼈도 소중하게 간직하며 꿈에서도 닭의 알을 품어 닭들의 닭, ‘닭쿠우스’를 숭배하고 있는 알란의 행동들은 메리조이를 중심으로 환락의 욕망으로 뒤섞인 양계장의 비밀들이 밝혀질 때까지 닭 눈을 엄지와 검지로 찌를 수밖에 없었던 알란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분열의 가면들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 사이에서 패러디는 웃음으로 치환되고 원작과 다르게 전복된 비밀들은 대한민국 치킨역사 게임을 하며 달리고 알란과 탁구경기를 하면서도 ‘닭쿠, 탁구’라는 동음이어의 웃음으로 맞서며 놀이로 밀고 나간다.

연출은 밥딜런의 ‘노킹 온 해븐스 도어’( Bob Dylan, Knockin On Heaven Door)를 여성복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설정하며 알란의 시선을 연결한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의 영화관 일탈 행위를 본 알런의 행동을 닭쿠우스에서는 한걸음 더 들어간다. 원작 질 메디슨은 양계장에서 일하며 몸을 파는 극중 인물 메리조이로 분하고 알란은 돈을 건네고 사랑행위를 나눈다. 메이조이는 알런 아빠와도 일탈된 행동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고 극의 마지막 종점은 패러디의 반전이다. 연극은 환락의 욕망으로 뒤섞인 양계장으로 다이다이 박사도 밀어 넣고 무대는 닭들의 난장으로 형상화되며 광란의 공간으로 변화된다. 좁은 눈으로 타락한 인간욕망의 비밀들을 바라본 닭들의 광기는 배우들의 디테일한 움직임으로 구현되며 알런과 말들의 현란한 군무(群舞)를 연상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이다. 알런은 닭의 투구를 쓰고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다이다이 박사를 연민(憐憫)의 심연으로 포옹한다. 원작에서는 말의 눈을 찌른 알런의 정신분열적 행동을 통해 순수한 인간의 내면의 결핍과 정신분열의 원인을 추적한다. 이 사이에 바라보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종교적 시선과 숭배, 욕망과 비정상의 광기로 균열된 인간의 자아를 다이사트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패러디된 ‘닭쿠우스’는 인간의 추한 욕망과 겹핍된 자아를 극복하고 넘어 설수 없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다이다이)을 소년(알란)이 온기로 포옹하는 것으로 패러디된다.

이철희 작, 연출 ‘닭쿠우스’는 재밌다. 배우들 앙상블도 뛰어나다. 놀이로 전개되는 극중 장면의 밀도와 템포도 놀이로 달리고 기발함과 재치로 타격하면서도 패러디의 진지함도 유지한다. 아쉬운 것은 패러디 속살에서 비쳐지는 원작 비틀기가 ‘말’의 숭배를 ‘닭’의 세계로 치환하고 등장인물 설정을 패러디로 전복시키며 다이다이 박사의 절규와 알란의 비정상적인 행동의 개연성을 이해하기에는 극은 웃다가 끝난다. 알란 역의 이기돈은 웃음으로 가려질 수 있는 패러디의 한계를 좋은 연기로 그려냈고 아버지 김문식과 다이다이 박사 정나진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연극 ‘닭쿠우스’를 진지한 웃음으로 끌고 갔다. 소극장 공연과는 달리 극장 공간의 변화로 배우들의 에너지와 공간 활용, 장면을 응집하는 밀도의 틈이 달라진 것이 아쉽다.




|미니인터뷰(연출 이철희)



“내 세계에서는 ‘닭쿠우스’가 세대의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패러디는 조치원해문이 이어 충청시리즈 두 번째다. 무대배경과 배우들 대사가 고향 언어로 간다. 지역정서와 작품 속 놀이성이 잘 맞아서인가?

“충청도 사투리로 대본을 쓰는 이유가 비단 방언의 특성이 연극적 유희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외에도 조치원 해문이로 벽산희곡상을 수상한 이후 충남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충남 사투리는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고 내 기준 번역 작품을 한국적 정서로 풀어가는 데 유리한 필터라고 생각했다.”

-원작 ‘에쿠우스’를 통한 ‘닭쿠우스’ 차용이 기발하다.

“최초 구상 시기는 2004년인가 2005년 즈음의 에쿠우스 공연부터인 것 같다. 극단 실험극장에 소속이 되어 있었는데 말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다.(웃음) 출연을 못했고 스텝을 하면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많았다. 이를테면 알런이 도입부에 부르는 “더블민트는 우리의 기쁨~” 같은 씨엠송은 정신이상자의 중얼거림일 뿐 그것이 광고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생이 제주도에 있는 남의 집 마구간에 들어가 꼬챙이로 말 눈을 찔렀다고 뉴스에 보도가 된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피부로 와 닿는 사건의 실제충격은 사라지고 연극이 아름답게 포장됨을 바라보며 안타까웠고 그 인연으로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닭쿠우스>는 알란의 정신분열적 증세로 출발하지만 알란 바라보는 인간이 비정상적인 분열을 겪게 된다. 어찌 보면, 알란의 행동과 분열은 정상적인 행동을 수 있다. 인간은 내면에 정신분열을 가지고 있지 않나.

“연극은 알란이 정신분열적 증세로 출발하지 않는다. 도입부터 이 작품은 연극이고 패러디임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구체적으로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철저하게 이것은 연극임을 잊지 않게 객관화 하는 것이 중요했다. 메타적 방법을 통해 관객들은 관극을 하고 있다는 경계를 허물게 되며 마음을 열게 된다. 그 출발선에서 등장한 알란은 정신분열증세가 아니라 정신분열인척 하는 패러디로써의 연극놀이를 하는 것 뿐이다. 이 작품은 바로 잠들어 있는 다이다이 한 사람을 깨우기 위한 일종의 연극치료로 볼 수 있다. 일상의 다이다이 박사가 극의 마지막에 ‘난 어둠이지만 남의 살을 벨 듯 예민한 닭 벼슬을 끼우며 버티는 장면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야성을 가지고 자신과 늘 싸우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누구나 처해진 환경 속에 순응하며 살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

-진지함을 유쾌하게 비트는 언어, 놀이를 통해 작품이 현실이 아닌, 게임을 즐기듯 알란과 가족, 다다다이와 주변 인물을 따라가며 패러디 재구성이라는 전제하에 극을 풀어간다. 이 작품을 놀이로 풀어낸 이유가 있나.

“장난과 놀이는 이 연극에서 매우 중요한 연극적 요소다. 특히 패러디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으로 그 당위성은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내 세계에서는 이것이 이 세대의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공연에는 소극장에서 오는 밀도감이 좋았다. 이번 공연은 다소 넓어진 극장공간을 쓰면서 2막 넘어가며 전체공간을 사용했다. 공간의 이동으로 전작 공연과는 차이 나는 밀도에 틈이 생긴 것 같다.

“초연 때 배우들의 에너지는 굉장했다. 작은 극장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다 마지막 다이다이가 절정에 다다랐던 장면은 뜨거웠다. 하지만 대학로 예술극장으로 오면서 전략을 바꾸었다. 커튼을 열고 빈 무대 위에 배우들만 놓음으로써 관객들이 보다 더 사유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난 이 변화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좁은 극장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만 봐야하는 수동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이번 재연은 관객이 넓어진 공간의 틈으로 들어오면서 사유하게 된 것이다. 이 틈은 긍정적이다.”


-배우출신이면서 작가이자 연출도 한다. 작품에서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표현들을 배우들은 적응했나.

“나는 배우이며 작가이자 연출이다. 연출을 전업으로 하는 분들보다는 배우의 심리를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단순히 안다가 아니라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몸으로 체득되어진 것이다. 초연 때는 배우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다이다이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비정상적인 태도를 취하고 맥락 없는 대사를 읊어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공연 첫 모임 때 일부 배우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고 말했다.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연출의 표현요구, 결과물은 배우들 자신 스스로와 부단히 많이 싸운 결과물이다.”

-알란의 이기돈 배우의 무거움이 극의 중심을 잡고 다다다이와 다른 인물들이 활력을 주었는데, 오히려 극 초반부터 알란이 정서적 접근 보다는 놀이적 인물로 변주했다면 작품과 장면을 연결시키는데 좋았을 것 같다.

“알란을 무겁게 그리지 않았고 무겁게 연기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다음 삼연 때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질문하신부분이 맞는 게 이 작품은 원작을 전복시켜 역설로 제시하는 극이다. 즉 ‘에쿠우스’의 다이다이는 ‘닭쿠우스’의 알란이고 ‘에쿠우스’의 알런은 ‘닭쿠우스’의 다이다이인 것이다. 결국 치료 받아야 할 대상은 다이다이인 것이다.”

-작품이 웃음으로 달려 재밌다. 앞으로 계획은.

“다음 작품은 <조치원 해문이>가 돌아온다. <극단 코너스톤>이 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3년 동안 충남시리즈 한편 씩 제작하게 된다. 앞으로 관객과 예술가들이 경계 없는 자유로운 연극 안에서 마음껏 즐기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 코너스톤의 연극뿐만 아니라 이 지면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연극에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이번 작품을 쓴 이철희는 분야의 3종을 석권한 배우이자 연출가다. 하나 더 있다면, 극단 코너스톤 대표다. 2003년 연극 <금의환향>으로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조치원해문이>로 제4회 벽산예술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등단했고 이 작품을 연출했다. <율구>, <분노하세요>, <철가방 추적 작전>, <푸른 배 이야기>, <조치원해문이>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이고 있다. 특히 희극연기에는 타고난 재능을 보인다. 극단을 소개하는 그는 “코너스톤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놓는 기초석으로 연극을 위한 이야기(story)와 형식(form)에 대한 탐구는 사람에 대한 성찰로 부터 시작된다. 이를 무대화 하여 보다 가치 있는 삶으로 견인 하는 연극적 기초. 이것이 코너스톤이 가진 극단 창단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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