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기 재임 총리가 된다. 얼마나 더 오래 자리를 지킬지는 수 없다.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법무부 장관 외에는 달리 개각을 예정하고 있지는 않다(지난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초청행사)”고 밝히면서 ‘이낙연 체제’를 당분간 더 끌고 갈 의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총리의 정치적 진로는 쉽게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다. 다음 달 9일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국정 운영과 내년 총선뿐 아니라 ‘차기 대권 후보’라는 이 총리의 위상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2인자’라는 양날의 검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대권’을 꿈꾸는 이 총리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개각은 총선 출마 요구와 수요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때 가서 고민하겠지만,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총리나 의원 출신 장관들이 내년 총선에 반드시 차출된다는 전제는 잘못된 것이다. 한 명도 차출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총리 교체 여부는 인사권자인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어느 시점이라고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개각이 예정돼 있지 않다고 밝히면서 일단 ‘일본 방문 직후 사퇴설’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이 총리는 최근 일본 방문 이후 기내 간담회를 하면서 ‘국회에 언제 돌아가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저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리가 직전 최장기 재임 총리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880일 재임)의 기록을 뛰어넘으면서 당분간 정치적 주목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총리는 외교와 내치에서 모두 ‘실세 총리’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총리가 지난 22일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타고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것은 상징적 장면이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일왕과 아베 신조 총리에게 전달했다. 꽉 막힌 한·일 관계에서도 ‘지일파’인 이 총리의 역할이 주목받은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이후 이 총리의 해외 순방에 대통령 전용기를 제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가 총리 해외 순방에 대통령 전용기를 제공하는 것도 편의 제공을 넘어 총리 외교의 격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이 총리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보여주는 예다.
국내 정치에서도 ‘군기 반장’으로 내각을 이끌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을 휘어잡으면서 국정 장악력을 뽐내고 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총리와의 주례회동을 통해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당분간 개각은 없다’는 청와대의 선 긋기에도 이 총리 ‘활용법’을 두고 여권 내에서는 설왕설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선 유력한 시나리오는 연말이나 내년 1월 총선 출마 공직자 사퇴 시한에 맞춰 여당으로 복귀하는 방안이다. 이 총리가 총선에서 서울 종로나 세종시 등 상징적인 지역구에 출마하거나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 번호를 받고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방안이다. ‘조국 사태’로 중도층의 지지를 잃은 여당으로서도 중도적이고 안정적 성향의 이 총리가 복귀하는 게 당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까지 총리직을 유지한 뒤 여당 대표 등에 도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총선 전에 총리가 바뀔 경우, 국회 검증 과정 등에서 여권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총리는 인사청문회를 거칠 뿐 아니라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파상공세를 이어갈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어서 여권 입장에서는 수세에 몰릴 수도 있다.
대권 주자인 이 총리 개인으로서도 정치적 미래를 구체적으로 고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총리의 지지율은 상당 부분 문 대통령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 총리에 대한 지지가 문 대통령 지지와 연동돼 있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리가 문 대통령 적극적 지지층의 지원은 받겠지만 그것이 한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레임덕’은 필연적이고, 이에 따라 차기 대권 후보가 현 대통령과 차별화는 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었다. 이 총리가 문재인 정부가 차별화를 해야 할 ‘결단의 시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총리가 김황식 전 총리나 정홍원 전 총리 같은 비(非)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선출직 정치인 출신인 만큼, 총선에 맞춰 당에 돌아가는 게 자연스럽다”며 “총선에서 역할, 문재인 정부와의 적절한 차별화 등이 대선주자로서의 실질적 첫 관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