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수감생활을 한 윤모씨가 자신은 누명을 썼던 것이라며 “명예를 되찾고 싶다”고 12일 중앙일보에 밝혔다. 현재 충북 청주에 거주 중인 윤씨는 전날인 11일 취재진과 만나 검거되던 때부터 재판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증언했다고 한다.
윤씨는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에 살던 박모(13)양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7월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이 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방한 범죄로 분류됐었다. 이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됐던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약 20년 동안 복역한 끝에 2009년 가석방됐다. 1급 모범수로 분류돼 나올 수 있었다.
윤씨에 따르면 그는 사건 당일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체포됐을 때는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먹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다. 윤씨는 이후 사흘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경찰이) 사흘간 잠도 안 재우고 조사했다. ‘내가 한 게 아니다’고 하니 주먹으로 맞고 발로 차였다”면서 “다리가 불편한데 쪼그려뛰기도 시켰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 탓에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는 “형사가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고 겁을 줘서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8차 사건도 내가 한 짓”이라고 자백하면서 과거 경찰의 강압·부실 수사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8차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은 가혹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윤씨는 “나도 보도를 봤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며 “정말로 그 당시 수사가 당당했는지. 양심이 있다면 진실을 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윤씨가 팔 힘이 좋아 담을 훌쩍 넘어 피해자인 박양 자택에 침입했다고 밝혔었다. 윤씨가 현장 검증에서 실제로 담을 훌쩍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윤씨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당시 수사기록에는 담을 넘었다고 돼 있는데 나는 담을 넘지 않았다. 넘는 시늉만 했다”며 “그것도 형사들이 뒤를 받쳐줘서 가능했던 거라고 친척들에게 들었다”고 반박했다.
윤씨는 “내가 피해자 방 위치를 정확히 지목했다는 보도도 있던데 나는 그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피해자 오빠와 친구 사이라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 실제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다. 동네가 좁으니까 봤었을 법도 하지만 누군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해명했다.
피해자 방에서 자신의 체모가 나왔던 것에 대해서도 “가본 적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체모가 나오나. 내가 아는 건 체포 직전에 5~6번 정도 체모를 뽑아 줬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속돼 구치소에 들어간 뒤에는 교도관과 수형자들이 ‘넌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라고 해 사형은 면해보려고 1심에서 거짓으로 시인했다. 2심에서 담당 검사한테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한 뒤 재심을 준비 중이다. ‘무기수 김신혜’ ‘약촌오거리 살인’ 등 여러 사건의 재심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가 윤씨의 재심청구 추진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박 변호사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사건에 대한 개인적 욕심을 내려놓고 이 사건에 딱 맞는 변호인단을 꾸릴 생각”이라며 “윤 씨 입장에서는 하늘이 준 기회로, 잘 살려가겠다”고 적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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