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처럼 매서웠던 염기훈의 왼발이 기적을 써내려가던 화성 FC의 돌풍을 잠재웠다.
염기훈은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KEB하나은행 FA(대한축구협회)컵 준결승 2차전 화성과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수원 삼성의 3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주장 염기훈의 활약으로 수원은 1·2차전 합계 3대 1로 FA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4부리그 격인 K3리그 어드밴스에 소속된 세미프로팀인 화성은 이번 FA컵에서 기적을 쓰고 있었다. 8강에서 K리그1 경남 FC를 2대 1로 꺾고 K3리그 팀으로선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어 지난달 18일 홈에서 수원과 비등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1대 0승리를 거두기까지 했다.
이날 경기 전반에도 화성은 준결승 진출이 단지 운이 아님을 증명하듯 짜임새있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수중전을 대비해 경기장에 물을 뿌려가면서까지 이번 경기를 준비한 화성은 수비라인을 후방으로 끌어내린 후 롱볼로 역습을 노렸다.
화성의 선수비 후역습 전략은 몇 번의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냈다. 특히 대회 6경기에서 7골을 넣은 유병수의 활약이 돋보였다. 전반 30분 역습에 나선 수원 출신 문준호가 좌측 측면을 드리블로 돌파한 후 올린 크로스에 유병수가 발을 갖다 댔지만 수비에 막혔다. 4분 뒤엔 유병수가 측면으로 내준 볼을 전보훈이 가까운쪽 포스트를 노리고 강력한 슛을 때렸지만 노동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수원 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할 만한 슛이었다.
수원은 경기를 주도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전반 20분 홍철의 크로스를 염기훈이 헤딩으로 떨궈 놓았지만 수비에 걸렸고, 1분 뒤엔 화성의 자책골 상황을 만들어냈지만 비디오 판독(VAR) 끝에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지며 골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수원의 파상공세를 화성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육탄 방어로 막아냈다.
수원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한의권을 빼고 오현규를 투입했다. 교체카드는 성공했다. 오현규는 교체 직후 페널티 박스 바로 정면에서 돌파를 시도하다 프리킥 찬스를 만들어 냈다. 다음은 ‘왼발의 마술사’ 염기훈의 차례였다. 염기훈의 왼발을 떠난 볼은 화성 수비의 머리를 맞고 굴절돼 화성 골망을 갈라 수원은 총합 1-1 동률을 만들었다.
수원은 계속해서 경기를 주도하고 슈팅을 때렸지만 소득이 없었다. 후반 69분 홍철이 왼 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골 포스트를 때렸고 후반 74분 타가트의 헤더는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태풍으로 인한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양 팀은 후반까지 90분 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승부를 가른 건 연장 전반 8분 화성 조영진의 퇴장이었다. 조영진은 거친 태클로 경고가 누적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화성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끝까지 뛰는 활동량을 보여줬지만 수적 약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 틈새를 수원의 주장 염기훈이 파고들었다. 염기훈은 연장 후반 2분 타가트가 문전 앞에서 가슴으로 떨어뜨린 볼을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에 꽂아 넣었다. 연이은 선방을 보여주던 이시환 골키퍼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염기훈은 2분 뒤엔 전세진이 유도한 페널티킥을 가뿐히 성공시키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이임생 수원 감독은 눈물을 글썽였고 서포터즈석에선 팬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경기는 3대 0으로 마무리 됐다. 빗줄기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화성 선수들과 승리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 수원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수원은 다음달 6일과 10일 이날 상주 상무를 꺾은 또 다른 돌풍의 팀 대전 코레일과의 결승전을 펼친다. 수원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포항 스틸러스(4회 우승)를 제치고 FA컵 최다 우승팀이 된다. K리그1 8위(승점 40점)로 3위 서울(51점) 승점 11점 뒤쳐져 있는 수원은 FA컵에서 우승해야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티켓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비록 도전은 멈췄지만 3~4억의 몸값으로 몸값만 80억에 달하는 수원 선수단에 비등한 경기력을 보인 화성 선수단에 우비를 입은 300여명의 원정 팬들은 끝까지 박수를 보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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