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 휴대전화 매장이 밀집해 있는 1층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한 매장에선 “월 7만원대 요금을 쓰면 최신 스마트폰 단말기 값이 0원”이라고 했고, 바로 옆 매장에선 같은 스마트폰인데도 공짜폰을 받으려면 최소 10만원대 요금제를 써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계산기를 두들기며 “우리는 이정도 금액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했다. 이동통신사의 공시 지원금과 대리점의 추가 지원금(공시 지원금의 최대 15%) 외 보조금 지급은 불법이지만 현실에선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고가 요금제와 연계한 보조금 차등 지급 등 이통사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10월 시행된 단통법은 이통사와 각 대리점이 단말기 출고가와 보조금, 판매가 등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그 이상의 보조금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이통사 간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 통신요금 인하를 촉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날 용산 전자상가와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최신 스마트폰 단말기 가격을 문의한 결과 보조금 액수는 한날 같은 시간에도 대리점마다 천차만별이었다. 단말기당 적게는 35만원에서 많게는 60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판매업자 유모(47)씨는 “스마트폰 개통 시점에 따라 같은 판매점이라도 보조금이 4만~5만원씩 차이가 난다”며 “각 대리점이 그날 스마트폰 몇 대를 개통해 얼마의 이익을 남겼는지가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매업자는 “추석 직전에 보조금이 대량 풀려 100만원이 넘는 스마트폰 단말기를 현금 5만원에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런 제보가 속출하자 지난 16일 단통법 위반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단속에 걸려도 단말기 하나 더 파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온다. 방통위 단속이 특정 시기 한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돼 통신 시장 경쟁이 과열되고 불법 보조금이 횡행할 때 주로 나타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비자들은 어느 매장에 가야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지 눈치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테크노마트에서 만난 최모(34)씨는 “요즘 제값 내고 스마트폰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특정 날짜에 어느 업체의 보조금이 풀린다는 정보가 공공연하게 올라오고, 발품을 파는 만큼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42)씨는 “지난달 5G 스마트폰을 출고가의 30% 가격으로 구매해 흡족해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공짜로 샀다는 사람들이 많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부의 보조금 규제가 사실상 아무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는 지난 8월 말 논평을 내 “정상적으로 단말기를 구입하는 소비자들만 호갱이 되고 있다”며 방통위의 적극적인 단속과 처벌을 촉구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후 단말기 값 격차가 줄어들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단말기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줄었다”며 “다만 휴대전화 판매점이 전국에 산재해 있어 불시 조사를 한다 해도 불법 보조금 지급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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