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해고자·실업자,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 파업 때 노동자의 사업장 점거는 금지된다.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도 가능해진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3개 법 개정안을 마련, 31일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앞서 ILO 협약의 국회 비준동의안을 외교부에 검토 의뢰했다. (국민일보 7월 26일자 8면 참조)
정부의 3개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국내 노사 관계에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진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노사 모두 강력 반발하고 있어 법 통과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고용부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의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등 3개 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3개 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우선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 지금도 실업자와 해고자는 산별 노조를 포함한 초(超)기업 노조에는 가입할 수 있고 기업별 노조에서도 단체교섭 등에는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금지되는데 개정안은 이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퇴직 공무원과 교원, 소방공무원, 대학 교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되 ‘지휘·감독, 총괄업무 주로 종사자’ 등은 노조 가입이 제한된다.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도 삭제된다. 다만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더라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해 과도한 급여는 주지 못하게 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된다. 노조는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사업장 내 생산 시설과 주요 업무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것이 금지된다. 또 현행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도 달라진다. 사용자가 개별교섭에 동의할 경우 모든 노조에 대한 성실 교섭과 함께 차별 금지 의무가 부여된다.
경영계가 요구해온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 폐지 등은 이번 정부의 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고용부는 입법예고 후 의견수렴을 거쳐 법안을 확정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지난 22일에는 ILO 핵심협약 제87호, 제98호, 제29호의 비준을 외교부에 의뢰했다. 외교부 검토가 끝나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정기국회에 비준 동의안이 제출된다.
정부가 세가지 법 개정안을 한꺼번에 내놓은 것은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핵심협약 기준을 반영한 법 개정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ILO 핵심협약 8개 가운데 한국은 아직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정부는 강제노동 협약 제105호를 제외한 3개의 비준을 추진 중이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이 한국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분쟁 해결 절차 최종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해 무역 제재를 위한 절차에 들어간 만큼 서둘러 법 개정안을 내 놓았다.
다만 고용부가 내놓은 법 개정안이 노사의 동의를 받은 게 아니어서 노사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이번 법 개정안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반영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실제 법 개정안과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노동계는 법 개정안이 ‘개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시 직장점거 제한 등이 노동자의 단결권을 크게 해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실업자 및 해고자의 결사의 자유, 노조 임원 자격, 전임자 급여,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 등은 국제노동기준에 훨씬 못 미칠뿐더러 취지에도 반한다”며 “고용부 법 개정안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안이다. 정부의 노동정책은 파탄 났다”고 비난했다. 한국노총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이대로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인다면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영계는 한국 노사관계가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동계에 편향된 안이라는 불만을 드러냈다. 또 노동자의 단결권을 강화해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입장문을 통해 “권고안은 친노동계 교수 위주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이 파행적인 운영 과정에서 제시한 노동계 입장에 편향된 안”이라며 반발했다. 이어 “한국 노사관계의 특수성과 후진성 등 현실적 여건을 글로벌 스탠다드(국제적 기준)에 따라 선진화해나가야 하는 법·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고려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노사 간 입장이 균형있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경영계가 이 권고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누차 밝혔는데도 정부가 이를 도외시한 점은 유감스럽다”며 “정부는 자체적으로 정식 노사를 포함해 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해 국가적으로 균형감 있고 선진화된 입법안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오랜 기간 형성된 법·제도와 견고해진 노사 관행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만큼 이번 법 개정안 제출을 통해 노사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우리 노사관계를 바꿔 나가는 계기로 삼아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모규엽 최예슬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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