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의 진원지인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북한의 3G 이동통신망 구축과 유지에 관여해왔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부품을 쓰는 화웨이가 북한에 장비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대북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 정부가 대(對) 화웨이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WP는 이날 전직 화웨이 직원 등에게서 확보한 내부 문서와 관계자들을 인용해 화웨이가 2016년 상반기까지 최소 8년간 비밀리에 북한의 상업용 무선네트워크 구축과 유지를 도왔다고 보도했다.
2008년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이 북한의 조선우편통신공사와 지분합작으로 무선통신업체 고려링크를 설립해 3G망을 구축했다.
이때 화웨이가 중국 국영기업 판다 인터내셔널 정보기술과의 제휴를 통해 장비 및 관리서비스 제공 등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중국 유명 전자기기업체 판다그룹에 소속된 판다 인터내셔널 정보기술(이하 판다)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화웨이가 북한에 기지국과 안테나 등 고려링크 설립에 필요한 장비를 전달하는 데 판다가 매개 역할을 했다.
2008년 계약서를 보면 판다는 화웨이의 장비를 북중 국경지대인 단둥 지역으로 나르게 돼있다. 그곳에서 장비들이 철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화웨이는 장비 제공뿐만 아니라 망통합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제공에도 관여했으며 관리서비스와 네트워크 보증 서비스도 제공했다. 내부자료에서 화웨이는 북한 등 제재대상국을 직접 거명하는 대신 암호로 부르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을 ‘A9’으로 지칭하는 식이다. 화웨이 직원들이 쓰는 커뮤니티에는 2008년 고려링크 설립을 돕기 위해 ‘A9’에서 일하다가 베이징올림픽 때문에 귀국했다는 글이 있고 로마자를 이용해 북한을 ‘chaoxian’으로 표기한 대목도 있다. 화웨이와 판다는 2016년 상반기에 평양 사무실을 비웠다. 화웨이와 판다 직원들은 수년간 평양 김일성 광장 인근의 비싸지 않은 호텔에서 일했다.
화웨이는 같은 해 북한 등 제재대상국에 미국 기술이 넘어갔는지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를 받았으며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파악되면 미 정부로부터 추가 제재나 형사 처벌 등을 받을 수 있다. WP는 또 서구 각국이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에 있어 화웨이를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배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WP는 특히 이러한 의혹이 미·중 무역협상과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시점에 제기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각각의 협상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화웨이는 “화웨이는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의 모든 수출규제와 제재 관련법을 포함해 우리가 진출한 국가와 지역의 모든 법과 규제를 준수하는 데 완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판다는 답변을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WP보도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파악해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거듭 강조했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에 영향을 줄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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