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상산고와 경기 안산동산고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 유지는 오는 19일쯤 결정될 예정이다. 시·도교육청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나머지 자사고 9곳(서울 8곳, 부산 1곳)의 운명은 이달 말 혹은 다음달 초 갈릴 전망이다. 특히 전북교육청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은 상산고를 교육부가 ‘부동의’ 결정을 통해 구제해줄지 교육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육부가 어떤 결정을 하든 한동안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14일 교육계 관측을 종합하면 상산고는 자사고 지위 유지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먼저 정치권 반발 때문이다. 교육부는 “정치적 해석은 자제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입시나 교과서 정책같은 휘발성 강한 정책을 정할 때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여권 주장에 따라왔다. 적어도 여당 선거 전략에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이런 호소는 교육계에서 별다른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상산고 탈락 소식이 전해지자 전북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난 상태다. 국회의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을 비롯해 전북을 지역구로 둔 민주평화당 정동영 조배숙 김종회 유성엽 의원 등이 반발하고 있다. 상산고가 있는 전주을 지역구인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다. 교육계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전북 지역을 탈환하려는 여당에게 상산고 탈락은 악재, 야당에는 호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여당 분위기는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에게서 엿볼 수 있다. 조 의원은 텔레비전 토론이나 국회 교육위 회의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대체로 두둔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상산고만큼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회 교육위에서 전북만 평가기준이 80점이고 사회통합전형에서 감점한 부분 등을 문제 삼고 전북교육청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상산고를 무리하게 탈락시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취지가 훼손됐다는 취지로 김승환 전북교육감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교육부는 “교육청 평가 절차에 문제가 없었는지 엄격히 들여다볼 것”이란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원론적인 입장으로 보이지만 평가에서 하자가 발견되면 부동의가 가능하다는 ‘복선’도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상산고는 79.61점으로 기준점 80점에 불과 0.39점 모자라 탈락했다. 상산고와 비슷한 점수에도 평가를 통과한 민족사관고(79.77점)와 희비가 갈렸다. 상산고 측과 전북지역 정치권 등은 사회통합전형 등에서 부당하게 점수를 깎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교육부가 이런 주장을 하나라고 받아들이면 ‘0.39점차 탈락’은 뒤집힐 수 있다. 한 교육부 직원은 “전북 정치인 전체와 싸우는 것보다 김승환 교육감과 전북교육청과 싸우는 편이 교육부 입장에선 나을 듯”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 부담은 만만치 않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참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상산고를 교육부가 나서서 구제해주면 진보교육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 공약파기부터 정치에 휘둘렸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공격에 시달려야 한다. 특히 자사고 평가는 시·도교육감 권한인데다 초·중등 행정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정부 정책 기조에 역행한 사례로 남게 된다. 상산고를 탈락시킨 김 교육감이 회장으로 있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 반발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감협은 “자사고 평가권을 교육감에 되돌려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산고만 구제할 경우 다른 지역 반발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서울 지역 자사고학부모들은 “힘없는 자사고만 탈락 위기에 놓였다”는 입장이다. 상산고 부동의 결정은 올해 평가에서 전국단위 자사고를 모두 살려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앞서 서울 하나고, 충남 천안북일고, 강원 민사고 울산 현대청운고, 경북 포항제철고, 전남 광양제철고 등은 평가를 통과한 상태다.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해 입시 명문이 된 자사고는 건드리지 못하고, 지역(광역시·도) 단위에서 선발하는 자사고들에만 철퇴를 내렸다는 비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국구’ 입시 명문인 전국단위 자사고는 두고 시장원리에 맡겨 놓으면 자연스럽게 일반고로 전환할 지역 단위 자사고만 건드려 현장만 들쑤셔놨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며 일반고 전환을 모색하는 자사고들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전북 군산중앙고와 남성고, 대구 경일여고가 일반고 전환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가 덜한 서울 지역 자사고들도 상당수가 경쟁률 1대 1을 밑도는 상황이다.
자사고 학비는 일반고의 3배다. 앞으로 고교무상교육이 시행되면 일반고 학비 부담은 사라지게 된다. 자사고들이 ‘학비 3배’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학습 분위기나 진학 실적이 신통치 않은 자사고 대신 일반고로 진학해 자사고 학비로 쓸 돈을 사교육에 쏟는 선택을 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자사고는 일반고와 후기고에서 학생을 모집해야 한다. 자사고 지원했다 떨어지면 선호도가 높은 일반고에 가기 어려워진다.

전국단위 자사고가 아니라면 매력이 떨어질 수 있는 요소다. 물론 자사고들이 교육 당국의 평가로 대거 일반고로 전환되면 살아남은 자사고들의 인기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장원리가 작동할 것으로 예측된다. 학령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비싼 학비를 내고 다닐 가치가 있는 자사고만 살아남게 된다는 얘기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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