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혼자 사는 여성을 몰래 뒤따라가 문고리를 잡는 영상으로 공분을 산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이 남성에게 강간미수 혐의가 적용되면서 법조계는 “강간의 고의가 과연 어떻게 입증될까”하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죄가 인정되면 강간죄의 인정 범위가 확대돼 교과서에 실릴 만한 판결이 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부장판사 김연학)는 11일 주거침입·강간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피의자 조모(29)씨의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영상이 공개되며 여론의 공분을 샀던 이 사건은 재판 역시 법리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씨의 행위를 과연 강간미수로 판단할 수 있을지 법조계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가는 중이다.
검찰은 조씨가 모자를 눌러쓰고 새벽 시간 술에 취한 여성을 뒤따라간 점,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들어가려 시도한 점에서 강간의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또 여성의 집 앞에서 중얼거리며 현관문을 두드리고 강제로 열려고 시도하는 등 피해자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준 행위가 강간죄의 착수에 해당하는 폭행과 협박이라고 판단했다. 조씨에게 여성 강제추행의 전력이 있었던 점도 고려됐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박은정)는 조씨에게 주거침입·강제추행미수와 주거침입·강간미수 중 어떤 혐의를 적용할 지 고심했다. 조씨는 검찰에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며 일단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10일 “추행의 의도였다면 길거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미 추행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한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의미도 담겼다”며 기소의 또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조씨가 유죄를 인정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법조계 입장은 팽팽하다. 판사 출신인 신중권 변호사는 “강간의 고의가 있었을 수는 있고, 그랬을 거라고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면서도 “강간죄는 예비·음모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강간죄 실행의 착수로 볼 만한 폭행이나 협박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복도와 엘리베이터도 주거공간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조씨와 피해자는 다른 공간에 분리돼 있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황만으로는 강간의 고의를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고, 검찰이 추가 증거를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조씨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교과서에 실릴 만한 판결’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강간죄의 인정 범위가 종전보다 확대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의 김상준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의 전형이라는 쪽에 무게를 뒀다. 김 변호사는 “조씨의 행동이 술에 취해 의식이 없었다고 보기엔 상당히 대담한 행동”이라며 “성적 충동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여성을 뒤따라가 집에 들어가려 하는 태도가 흔히 발생하는 주거침입 성폭력 범죄의 유형이라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서기호 변호사는 “문고리를 흔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한 목적이 성범죄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절도의 목적이라면 피해자가 모르게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고, 싸우려고 했다면 친분이 있는 사이거나 그 전에 언쟁이 있었어야 한다”고 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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