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패한 뒤 여의도 정치를 떠났다.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지역구인 서울 광진을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자갈밭’을 일구며 여의도로의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중이다.
전당대회 이후 100여일, 당권 라이벌이던 황교안 대표가 이끄는 한국당 상황을 오 전 시장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는 “지금은 쓴 소리보다 황 대표 체제가 안착되도록 지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재 보수 진영의 형편으로는 통합과 투쟁으로 여권에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 전 시장은 “막말 논란이 반복되면 한국당이 대안정당, 정책정당으로 변모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17일 광진구 오세훈 법률사무소에서 오 전 시장과 만났다. 조만간 개인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기 위한 사무실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월 전당대회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
“거의 일과의 90%를 지역구 일정 소화에 투자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광진을 당협위원장이 됐는데, 막상 와보니 한마디로 초토화 상태였다. 당원협의회 조직은 괴멸돼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선을 하는 동안 (한국당은) 한 번도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보니 조직을 재정비할 기회도 없었다. (내가) 강남, 종로 등에서 정치 활동을 해 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처음 한두 달은 흩어진 분들을 모아 외인구단을 만들 듯이 조직을 정비하는데 매달렸다. 지난달부터는 거리에 파라솔을 치고 당원모집을 하고 있다. 물려받은 책임당원 수가 450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약 2500분에게 입당 신청서를 받았다.”
-거리에서 접한 지역 민심은 어떤가.
“여기 광진을은 서울 49개 한국당 당협 중에서 제일 분위기가 안 좋은 축에 속한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험지, 자갈밭인 곳이다. 우리 당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30~40대 비율이 굉장히 높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18대 대선 때도 이곳은 5% 이상 우리 당이 졌을 정도로 민주당 강세인 곳이다. 당장 선거가 치러지면 이기기 어렵다. 그나마 저 같은 경우는 ‘신상품’에 대한 기대감, 5선 중진에 대한 피로감, 지역 경제 상황에 대한 실망감 및 발전 여망 등이 어우러져 한번 붙어볼 만한 것으로 기대한다.”
-황 대표 체제 100여일의 한국당을 평한다면.
“비판적인 언급을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웃음),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전당대회 이후 지리멸렬했던 보수 진영의 기초를 다시 튼튼히 하고, 지지층을 결속시키는데 황 대표가 굉장히 열심히 일했다. 선거제 개편안 등의 패스스트랙(신속처리안건) 강행에 장외투쟁을 벌이면서도 왜 한국당이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지 국민들께 어느 정도 메시지도 잘 전달한 것 같다. 특히 최근 당의 움직임을 보면 경제대전환위원회도 만들고, 2040 토크콘서트도 여는 등 중도층으로 가기 위한 걸음도 시작하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황 대표 취임 이후 한국당의 보수색채가 더 짙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예상했던 바 아닌가. 황교안이라는 정치인의 정체성을 보면, 그 분이 대표가 되면 보수색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당원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보완할 점이 있다면 내년 총선, 특히 수도권에서 총선을 치르려면 정치적 중도층 표심을 어떻게든 얻어야 하는데, 지금부터는 외연확장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부분이 관건이다.”
-보수 대권 잠룡들이 견제의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보수 정치인이든 당분간 취해야 할 입장은 통합과 투쟁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 정부는 경제나 안보에서의 성과로 승부하려기 보다 과거 회귀적인 정치 논리로 내년 총선을 치르려는 것 같다. 김원봉 서훈 문제 같은 정치적, 이념적 좌표를 들이대 국민을 갈라치기하려는 숨은 뜻이 읽힌다. 지금은 전투 와중에 있다. 보수 힘이 분산되지 않도록 해서 여권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을 전략적 투쟁이 필요하다.
-한국당 소속 인사들의 막말 논란이 계속 불거지는데.
“막말 논란은 두 가지로 나눠봐야 한다. 정말 대다수의 국민이 인상을 찌푸리고 ‘저건 아니다’라고 하는 말 그대로의 막말이 있는 반면에 여권 프레임과 편향된 언론이 막말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언론환경 속에서는 더욱 언사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막말의 경우 대부분 비유에서 나온다. 대안을 갖고 싸워야 하는데, 레토릭(수사·修辭)을 갖고 감정선을 자극하려다보니 무리하게 된다. 막말이 반복되면 대안정당, 정책정당 이미지도 훼손되지 않겠나. 이런 측면에서 당 지도부의 단속이 조금 필요하다.
-전당대회 때 ‘탈(脫) 박근혜’ ‘탄핵 수용론’ 등을 말했다. 지금도 유효한가.
“대부분의 보수 유권자들이 문재인정부에 대해 깊은 실망을 하고 있다. 엄청난 울화를 갖고 있는 상황이다.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강성보수 이미지가 보수 지지층에서 보다 각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총선이 다가올수록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강해지면서 중도층으로의 확장에 대한 평가 가치도 달라질 것이다. 황 대표도 이제부터 중도로 진격하겠다고 하니 지켜봐야 겠다. 성과를 내기 바란다.”
-문 대통령이 최근 한국당에 대한 공세 전면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문 대통령은 일하는 대통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 하려는 대통령이라면 3·1절 때 ‘친일파와 빨갱이’, 5·18 행사에서 ‘독재자의 후예’ 같은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비전형도 아니고 과거지향적 정치인이다.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는지 심히 회의적이다. 일로, 성과로 승부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 쪽 좌파 진영을 재결집 시키고, ‘나 좀 도와달라’고 호소해 선거에서 이길 궁리를 하는 것 같다.”
-홍문종 의원이 결국 탈당을 했다.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주민들이 심각한 우려와 걱정을 전했다. 보수 통합의 길로 가도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셨다. 정치가 과거지향적이 될수록 현 정부에 유리한 구도가 된다.”
-내년 총선까지 주요 계획은.
“두 가지다. 우선 한국당이 통합과 투쟁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돕겠다. 그 다음, 서울 동부지역의 허부인 광진구가 서울과 수도권의 총선 판세를 견인할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다. 광진을에서의 승리가 제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이라고 본다.
오 전 시장은 인터뷰가 끝난 뒤 지하철 7호선 건대입구역 부근에 빨간 파라솔을 펴고 거리에 서서 당원모집을 했다. ‘이동형 지역사무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뚝섬유원지역까지 파라솔을 옮기면서 밤 10시가 넘도록 시민들에게 “한국당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지호일 이종선 김용현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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