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 트럼프’ 성향인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가 9일(현지시간) 취임 일성으로 기후변화와의 싸움과 대중 관계 등 세계은행의 기존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총재로 취임하자마자 자신을 지명해 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책 기조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맬패스 총재는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는 극도의 빈곤을 통해서든, 공유된 번영을 통해서든 사람들이 맞닥뜨린 핵심 문제”라며 “석탄과 관련해서는 이사회가 이에 관한 정책을 수립했으며 나는 이 정책에 변화를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2013년부터 석탄발전소 자금지원을 중단했는데, 앞으로도 이 원칙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맬패스가 세계은행의 석탄발전소 자금지원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석탄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실체가 없다는 소신을 미국 에너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2017년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195개국이 맺은 파리 기후 협약에서 돌연 탈퇴하기도 했다.
맬패스 총재는 세계은행의 대중 관계도 유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은행이 이미 경제 대국이 된 중국에 여전히 관대하게 대출을 해준다고 불만을 터뜨려왔다. 맬패스 총재도 자신도 미 재무부 차관으로 일하던 2017년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세계은행이 중국 등 중산층 국가에 대한 대출을 줄이고 저소득 국가에 대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맬패스 총재가 세계은행의 기존 대중 관계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맬패스 총재는 “중국에 대한 세계은행 대출은 이미 감소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중국이 세계은행에 기여하고 전문 지식을 함께 공유하는 관계로 전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맬패스 총재가 앞으로도 세계은행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세계은행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것으로 믿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9일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 차관이던 맬패스가 세계은행 총재직을 맡고 있다”며 “세계은행은 그들(중국)의 일대일로에 심각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김용 전 총재가 임기를 3년여 남기고 돌연 사임하자 맬패스를 후임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세계은행 총재를 최대 지분을 가진 미국 정부가 추천하는 관행에 따라 맬패스 차관은 세계은행 집행이사회 만장일치로 5년 임기의 총재로 선출됐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