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군수기업 후지코시에 강제징용된 피해 할머니들도 배상을 받게 됐다. 법원은 18일 후지코시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서 하급심에서 잇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길이 열리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판사 임성근)는 18일 김계순(90)씨 등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27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피해자들에게 8000만원~1억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했다.
어린 소녀였던 김씨 등은 태평양전쟁 무렵이던 1944년~1945년 ‘일본에 가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재봉틀 등 특기 교육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근로정신대에 지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교육 대신 매일 10시간~12시간의 혹독한 노동과 감시에 시달리며 급여도 받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말쯤 귀국한 이들은 2003년 일본 도야마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2013년 2월 “일본 전범기업이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동원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행복추구권과 생존권, 신체의 자유,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4년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각각 8000만원~1억원을 배상하라”며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후지코시 측이 항소해 서울고법으로 사건이 올라갔지만 4년 넘게 계류돼 있었다. 대법원에서 법리적 판단을 같이하는 다른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이 5년만인 지난해 10월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다른 전범 기업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잇따라 배상을 받게 됐다. 미쓰비시 중공업·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대법원과 광주지법·고법 등에서 승소 했다. 이날 후지코시 강제징용 피해 판결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1심이 인정한 배상액이 과다하다는 후지코시 측 주장에 대해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김씨 등은 위험한 작업에 종사했고, 70년이 넘도록 보상이나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후지코시와 일본은 나이 어린 김씨 등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교사 등 연장자를 동원했다”며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기망, 회유, 협박 수단을 통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게 한 점을 비춰볼 때 1심에서 인정된 액수가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앞서 일본에서 내려진 판결에 귀속돼야한다는 후지코시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본 법원은 후지코시의 불법행위와 안전배려의무 위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한일청구권 협정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돼있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했다”며 “이러한 일본의 판결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일청구권 협정에 김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돼있다는 후지코시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 직후 피해자 측 대리인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12세~15세였던 피해자들을 데려가 강제노역을 시킨 아동 노예제의 불법성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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