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이승우, 벤투 손에 들린 마지막 1장의 카드

Է:2019-01-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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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폴리스 클럽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 국가대표팀의 아시안컵 훈련에 앞서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공격수 이승우는 먼 곳에 있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한 23명의 선수 중 가장 끝자락에 있다는 평가도 있다. 초기 구상에도 없었다. 나상호가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를 조기에 마감하면서 누군가 대체할 요원이 필요했고, 마침 이탈리아 세리에 B 휴식기를 보내던 이승우가 벤투 감독의 눈에 들어갔다. 이승우는 뒤늦게 대표팀으로 합류했다.

7분. 이승우가 벤투호에서 그라운드를 밟은 시간이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이승우가 벤투 감독에게 외면받고 있는 정황은 이 출전시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벤투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지난해 9월 코스타리카전에서 정규시간 80분을 넘어섰을 때 교체 출전이 사실상 전부였다. 벤투 감독은 이승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줬다.

이승우는 지난해 10월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데이에도 명단에 포함됐으나 출전 기회를 받을 수 없었다. 벤투 감독은 “같은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며 공개적으로 이승우의 분발을 촉구했다. 벤투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이 적더라도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뽑는다”고 공연하게 밝혔다. 당시 이승우가 소속팀 헬라스 베로나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것은 발탁이 불발된 아주 사소한 옵션일 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중국 슈퍼리그 외국인 용병 제한 규정으로 소속팀 광저우 에버그란데에서 전반기에 나설 수조차 없었던 김영권도 있었다.

아시안컵에 극적으로 합류했으나 이승우를 향한 벤투 감독의 외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3인 중 공격수와 미드필더로 선발된 선수들은 12명이다. 이들 중 조별리그 3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그라운드를 밟지조차 못한 선수는 단 한 명. 오직 이승우뿐이다. 아시안컵에 앞서 베로나에서 연일 선발출전 기회를 잡으며 맹활약을 펼친 터라 아쉬움을 더했다.

이승우로선 현 상황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한국이 16일 중국을 상대로 한 수 위의 경기력(2대 0 승)을 선보이며 조 1위를 확정했을 때 단 한 명, 이승우만 웃지 못했다. 격해진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중국전 마지막 교체카드로 구자철 이름이 호명되자 얼굴을 찡그리며 바로 옆에 있던 물병을 걷어찼다. 선배 정승현이 다독였지만 이승우는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땅에 떨어진 수건을 다시 한 번 찼다. 벤치로 돌아가면서는 손에 들고 있던 정강이 보호대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이승우가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폴리스 클럽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훈련하고 있다. 뉴시스

벤투의 교체카드 한 장, 그리고 이승우

이승우가 선발로 나오지 못한 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매우 현실적이다. 비록 남태희가 대회를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지만 여전히 대표팀 2선은 내부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지다. 출중한 요원들이 많다. 벤투 감독 역시 지난해 11월 A매치 명단을 발표하며 강조했던 바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대표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과 이청용, 구자철, 황인범, 정우영, 주세종까지. 상황에 따라 하프 스페이스를 넓게 활용하고자 한다면 황희찬 역시 라인을 내린 2선에서의 투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후반 조커로서의 교체 투입이다. 대체 발탁으로 뒤늦게 팀 훈련에 합류했던 이승우가 본격적으로 출전 가능성이 예상됐던 것은 지난 12일 키르기스스탄전(1대 0 승)이었다. 이승우는 이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경기 중 몸을 풀었다.

키르기스스탄은 예상과 다르게 극단적으로 움츠러들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격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치고 올라갔다. 위협적인 측면 역습도 수차례 시도했다. 상대 2선, 3선 공격진들은 수비 상황에서 일관된 배치 양상을 띄지 않았다. 실점 이후엔 압박 강도를 높여 한국 중원의 불안정성을 유도했다.

한국은 어딘가 전술적 변화가 필요했다. 벤투 감독은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7대 3가량으로 앞선 점유율에도 빡빡하게 세로 수비라인 간격을 유지한 수비수들을 상대로 공격을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자 공격적인 수를 꺼내 들었다.

첫 번째 교체카드로 구자철 대신 주세종을 투입했다. 황인범을 좀 더 전진시켜 상대 미드필더를 끌어내 황의조와 황희찬에게 조금이나마 자유를 주려는 계산이었다. 황인범은 상대 수비공간에서 빈 지점을 찾아다니며 전진 패스를 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았다. 두 번째 교체카드로 황의조를 빼고 지동원을 투입했다. 반복되는 공격 패턴으로 상대 수비수들의 조직력을 깨지 못하자 측면 공격에 더 힘을 싣고자 했다. 미세한 전술적 변화는 여기에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교체카드는 사용하지 않았다. 하프라인 근처에 서서 아시안컵 데뷔전을 그리던 이승우는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벤투 감독이 선호하는 백업 요원 두 명은 가닥이 잡혔다. 황의조의 체력 안배와 더불어 다른 공격 루트를 가져다줄 수 있는 지동원이 첫 번째다. 그리고 기성용이나 황인범을 좀 더 전진시킬 수 있으며 리드 상황에서 수비적인 밸런스를 가져다줄 수 있는 주세종이 두 번째다. 남은 것은 한 장의 교체카드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다. 키르기스스탄전에선 사용하지 않았고, 중국전에선 강행군을 이어간 손흥민에게 조금이나마 휴식을 주기 위해 돌아갔다. 이승우뿐 아니라 정승현, 권경원 역시 그 한 장의 교체카드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후보군이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베스트 11에 큰 변화를 두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이미 전술적으로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무실점 전승을 이어가며 상승세를 탄 선발진을 바꿀 이유도, 명분도 없다. 16강전이 열리는 22일까지 남은 시간은 닷새. 휴식할 시간도 충분하다. 남은 한 장의 교체카드가 이승우가 현재로서 노릴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이승우는 지난 8일 훈련을 앞둔 인터뷰에서 “항상 내게 주어진 상황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소속팀에서도 자리를 잡고 경기에 나섰다. 꾸준한 모습도 보여줘서 좋은 기회를 얻었다”면서 “선수로서 준비하고 있다. 감독님이 언제 투입할지 모른다. 잘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구상이나 과정이 어떻든, 벤투 감독은 이승우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다. 이승우는 그 순간의 기억을 되새겨야 한다. 최종 교체카드 한 장이 그에게 주어진 현 위치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은 조현우 역시 자신이 대회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함께 훈련했던 김승규, 김진현을 꼽았다. 결승까지 가는 짧고도 긴 여정에 함께하는 이들은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 뿐만이 아니다. 이승우 자신의 말대로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 대중 앞에서 서툰 말과 행동들이 수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선수로서, 자신의 행동 하나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팀의 승리가 유력한 상황에서 보여준 ‘물병 차기’는 생각이 짧았다. 대중이 박지성과 손흥민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단지 경기장 위에서 보여준 실력만이 아니었다. 이승우가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선배들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그라운드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 벤투 감독의 전술적 판단이 틀렸다면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증명해내면 그뿐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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