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정부가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일부러 높이려 했다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그 해 빚을 더 늘리진 않았다. 따라서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 등장하는 사건이 국가채무비율을 정말 높일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다. 8조7000억원의 적자국채 발행과 1조원의 바이백(국채 조기 상환) 취소가 국가채무비율에 준 영향을 살펴봤다.
ⓛ 2017년 11월 무슨 일 있었나
정부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 국채는 국가가 시장에 빚을 지는 채권이다. 신 전 사무관이 언급한 적자국채가 바로 빚을 지는 행위다. 국가가 지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한 후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국회에 국채 발행 한도를 승인 받는다. 빚을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허락을 받는 것이다. 정부가 2017년 국회에서 승인 받은 적자국채 발행 한도는 28조7000억원이다. 2017년 11월엔 한도가 8조7000억원 남아 있었다. 그 해가 끝나기 전 8조7000억원의 빚을 더 질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국가의 수입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반 가정도 기대보다 수입이 늘면 대출 계획을 조정한다. 신 전 사무관은 본인을 포함한 담당 공무원들은 ‘수입이 좋으니 8조7000억원의 빚을 더 내지 말자’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반면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는 ‘정무적 판단’을 얘기했다고 한다. 향후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비교가 될 정권 초기의 채무 규모를 키우자는 취지다. 8조7000억원 중 최소 4조원의 빚은 지자고 했다는 것이다. 논쟁 속에서 정부는 11월 14일 예정된 1조원 바이백을 돌연 취소한다.
② 국가채무비율과 연관된 사건은 8조7000억원
결론적으로 그 해 말 정부는 8조7000억원 적자국채 전액을 발행하지 않았다. 국가채무비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따라서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결론까지 이르기 전 논쟁 속에서 정말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 속엔 두 가지 사건이 나온다. 8조7000억원 적자국채 발행과 1조원 바이백 취소다. 국가채무비율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적자국채다. 바이백 취소는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적자국채는 빚을 더 늘리는 행위다. 청와대 압박 속에 정부가 그 해 11~12월 적자국채를 최소 4조원, 최대 8조7000억원 더 발행했다면 당연히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진다. 청와대가 채무비율을 조작하려고 했다면 이 사건과 연관이 있다.
③ 1조 바이백은 왜 취소했나
그렇다면 1조원 바이백 취소는 무엇일까. 바이백 취소는 국가채무비율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왜 부수적인 사건일까. 기재부는 2017년 11월 세 차례 바이백을 예정했는데 두 번째 바이백을 취소했다.
바이백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신규 국채를 발행하면서 만기가 도래할 국채를 미리 갚는 방법, 여유 재원으로 아예 빚을 갚는 방법이 그것이다. 매월 이뤄지는 바이백은 대부분 ‘빚을 내 빚을 갚는’ 것이다. 국채 시장의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를 새로운 국채로 갈아 끼우는 행위다. 당시 취소된 1조원 바이백도 이같은 물건 교체였다. 바이백을 계획대로 진행해도, 취소해도 국가채무비율엔 영향이 없었다. 초과 세수 등 여유 재원으로 만기가 도래한 국채를 조기 상환해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는 바이백은 최근 2년간 두 차례만 진행됐다.
1조원 바이백 취소가 적자국채 발행 한도를 늘리기 위한 시도라는 일각의 주장도 틀리다. ‘1조원 바이백 취소→빚을 순수하게 늘리는 적자국채 발행 한도 증가→국가채무비율 증가’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고리인 ‘1조원 바이백 취소→적자국채 발행 한도 증가’는 맞지 않다. 국회는 국채 발행 한도를 승인할 때 ‘순증용’과 ‘상환용’을 별도로 정한다. 각각 다른 한도를 가진 주머니다. 국회는 정부가 2017년 국채 발행시 순증용(적자국채·국채 발행으로 빚을 늘리는 행위)으로 총 28조7000억원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리고 ‘빚내서 빚 갚기’ 용도로 국채를 발행하는 상환용 한도는 별도 계정으로 허가했다. 그 해 총 19조4000억원이다.
따라서 적자국채 발행 행위와 바이백(물건 교체) 행위는 각각 다른 주머니에서 한도가 깎인다. 2017년 11월 1조원 바이백을 취소했다고 적자국채 발행 한도가 8조7000억원에서 9조70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적자국채 한도 측면에서도 1조원 바이백 취소는 국가채무비율과 연관이 없다.
④ 그렇다면 왜 바이백 취소? 시장 부담 때문
결국 1조원 바이백 취소는 국가채무비율이 아니라 시장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기재부 담당자들이 시장의 국채 소화 능력을 고려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7년 11월 14일까지 기재부는 8조7000억원의 적자국채 발행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만약 8조7000억원 적자국채 발행이 결정된다면 국채 시장엔 그 해 말 총 9조7000억원(적자국채 발행 8조7000억원+바이백을 위한 국채 발행 1조원)의 국채가 풀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 중 1조원은 국채를 발행해 다시 국채를 사들이는 교체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정부는 두 개의 국채를 ‘바이백용’, ‘적자국채용’으로,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한 꼬리표를 붙여 발행한다. 그렇더라도 시장 참여자들 입장에선 그냥 9조7000억원의 신규 국채 발행 물량이 쏟아지는 것 뿐이다. 투자자들에겐 꼬리표는 상관 없다.
이 부분에서 기재부 담당자들의 고민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11~12월엔 시장 참여자들도 국채를 사들일 ‘총알’이 소진된다. 연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재부도 보통 12월엔 국채 발행을 다른 달 보다 적게 한다.
그런데 기재부 입장에선 8조7000억원의 적자국채 발행 논의가 시작되면서 자칫하면 11~12월 시장이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신규 국채를 발행할 상황을 대비하게 됐다. 국가가 시장에 9조원이 넘은 신규 국채를 발행하는데, 투자자들이 사들일 여력이 없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기재부가 일단 적자국채 규모가 정해질 때까지 바이백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물량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기재부는 이후 8조7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된 이후 계획했던 바이백을 정상 진행했다. 물론 이 상황에서 1조원의 바이백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손해를 본 투자자가 있을 것이라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사실이다. 기재부가 바이백을 하루 전날 취소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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