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립유치원의 회계비리 파문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부 지원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한 것도 모자라 아이들 급식비까지 유용한 것으로 알려지자 분노한 학부모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6~2018년도 감사자료와 실명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1878개 사립유치원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박 의원은 멈추지 않고 “유치원 비리 해결의 끝을 보겠다”며 추가 자료 확보를 예고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은 “정치적 선동”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과 교육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립유치원 교사 “아이들 급식, 오병이어의 기적이었다”

‘비리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뒤 가장 큰 비난을 받은 것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환희유치원’이었다. 이곳 설립자겸 전 원장인 김모씨는 명품가방 구입, 고급 외제차 유지비, 숙박업소 이용료 등에 교비를 사용했다. 심지어 성인용품도 샀다.
김씨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월급을 한 달에 두 번씩 받고, 각종 수당까지 챙겼다고 한다. 자신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을 사무직원으로 채용한 뒤 월급 외에 약 3000만원을 더 주기도 했다. 김씨가 2014년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부정 사용한 금액은 6억8000만원에 이른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월 김씨를 파면했지만 학부모들은 이번에 명단이 공개되며 뒤늦게 알게 됐다.
경기도에 위치한 다른 유치원에서는 급식비를 빼돌리느라 아이들에게 부실한 식단이 제공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기도 하남의 한 유치원에 근무하는 A 교사는 18일 “아이들이 죽을 보면 ‘선생님 오늘은 물죽이에요?’라고 한다”며 “콘 샐러드는 통조림 그대로, 과일 샐러드는 후르츠 칵테일이었다”고 MBC에 털어놨다.
다른 유치원에서 일하는 교사도 “식단에 잔멸치가 있는 날에 실제로 아이들이 먹는 건 세네마리 정도였다”면서 “오병이어라고 하지 않나. 그런 일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한유총 “비리집단 꼬리표는 가짜뉴스”

한유총 측은 이 같은 감사 결과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유총은 18일 입장문을 내고 “박 의원이 (사립유치원에) ‘비리유치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단순 행정착오를 비리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법적 처벌도 받지 않은 사안에 대해 ‘비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한유총은 “공개된 감사 결과를 보면 유치원에 내려진 행정처분 4418건 가운데 96%가 현지조치·조의·시정·경고·개선·통보 등 지도·계도처분을 받았다”면서 “비리유치원이라는 지적은 가짜뉴스이자 정치 선동”이라고 강조했다.
급기야 “공금 횡령과 유용으로 징계받은 공무원 실명을 공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유총은 20일 입장문을 재차 내고 “2014년부터 3년간 징계를 받은 교육부 공무원 3600명 가운데 공금 횡령·유용으로 인한 징계가 77명이나 됐다”고 지적했다. 한유총은 15일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공개한 MBC에 대해 공개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서부지법에 냈다.
전국 사립유치원 3분의 2가 가입된 한유총은 1995년 창립됐다. 단체는 2002년 정부가 공립단설유치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사립유치원 경영난을 가중한다”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2004년에는 어린이집 등 보육 분야 단체와 맞서 ‘유아교육법’을 관철했고, 2012년 누리과정이 도입될 때는 국고지원금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여론에 “사립유치원 운영비는 사유재산”이라며 거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유총이 지난 16년간 도 넘은 집단행동을 벌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거리로 나선 엄마들 “책임자 처벌하라”

비리유치원 사태에 학부모의 분노는 들끓고 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책임자 처벌과 유치원 국가회계시스템 도입을 촉구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사립유치원 비리를 적발하고도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교육청 등에 대해 지난 1년간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 등을 지속해왔다. 이날 30~40대 여성 약 40명은 자녀들 손을 잡고 집회에 나왔다. 이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가 늦어진 까닭을 따지겠다. 감사원·국민권익위에 진정을 넣어 책임자 처벌에도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환희유치원이 위치한 동탄 지역 학부모들도 21일 오후 4시 경기도 화성 동탄센트럴파크 정문 앞에 모였다. 이들 역시 ‘국가회계시스템 도입’ ‘단설유치원 신설’ ‘국공립유치원 확충’ ‘적발 유치원 강력 처벌’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집회를 주도한 동탄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위원회)는 지난 15일 발족됐다. 위원회 측은 집회 안내문을 공지하며 ‘국가가 지켜줄 수 없다면 엄마 아빠가 지켜줄게’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이들은 “동탄의 엄마 아빠들은 비리가 적발된 사립유치원 사태에 대해 심각성을 깊이 통감한다”면서 “더는 비리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다”고 밝혔다.
당정청, 비리 재발방지 종합대책 논의

청와대, 여당, 교육부는 21일 오후 국회에서 비공개 협의를 열고 사립유치원 비리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논의했다. 민주당에서는 박 의원 등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청와대에서는 김수현 사회수석과 교육비서관 등이, 교육부에서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국가회계시스템 도입과 정기 실태조사 등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논의된 대책은 25일 교육부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은 19일부터 사립유치원 비리신고센터도 개통했다. 개통 첫날에만 모두 33건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온라인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인 ‘처음학교로’에 불참하는 사립유치원에 한해 내년 중 우선 감사를 실시하고 지원금 지급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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