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 은퇴식이 뭐라고…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최근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 봉중근(LG 트윈스)은 28일 서울 잠실야구장 내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기자회견장은 준비된 의자가 부족해 추가 의자를 준비해야했을 만큼 취재진으로 가득했다.
그런 겸양과는 달리 봉중근은 LG팬들에게 매우 특별한 선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봉중근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1군 무대에서 55승 46패 109세이브라는 기록을 남겼다. 붙박이 선발로 뛴 시즌이 4시즌에 불과해 승수는 많지 않지만 그의 선발 커리어는 굵직했다. 2007년 미국에서 KBO로 복귀해 적응기를 거친 뒤 2008~2010년 3년간 선발투수로서 맹활약했다.
봉중근은 KBO 데뷔 시즌 부진에 대해 “한국 타자들의 기량이 좋아 첫해 너무 힘들었다”며 “이후 미국에서 배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 스타일에 맞춰 훈련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난 이상훈 선배를 보면서 야구를 시작한 선수다. (이상훈처럼) LG에서 에이스라고 불렸던 그 3년이 내겐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중요한 경기마다 선발 중책을 맡아 17.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0.52라는 가공할 활약으로 ‘봉의사’라는 영광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봉중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며 “한국 야구를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지어주신 별명이다. 대대로 자랑거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봉미미’라는 별명도 좋아한다. 모두 관심이 있기에 지어주는 별명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011년 부상을 당한 뒤에는 마무리 투수로 전업했다. 2012시즌 봉중근은 평균자책점 1.18과 26세이브로 성공적인 마무리 데뷔를 치렀다. 봉중근 덕에 이후 3년간 LG는 마무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나이를 이기지 못했다. 2015년 4.9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크게 부진했던 봉중근은 2016년을 마지막으로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단 1번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재활 중 통증이 재발하며 봉중근은 은퇴를 결심했다.
‘어떻게 은퇴를 생각하게 됐나’는 질문에 봉중근은 “마운드에 서는 것이 두려웠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 7월 마운드에서 코치님이 공을 던져보라고 내게 공을 넘겨주셨는데, 던지기가 두렵더라”며 “내가 원래 던지는 걸 매우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 때 느꼈다. 이젠 안되겠구나”라고 설명했다.
아쉬움도 감추지 않았다. 또 “이 나이에 수술 뒤 재기에 성공한다면 후배들도 용기 내 좀 더 오래 야구를 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고 싶었는데 확실히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치님들이나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네 선택을 후회하지 마라’고 하시더라”며 “‘너는 할만큼 다 했다. 다시 팀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봉중근은 제2의 인생도 야구계에서 살아갈 예정이다. 봉중근은 “야구로 시작된 인생이니 평생 야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남은 시즌은 1군과 동행하며 경기를 지켜볼 예정이다.
봉중근은 자신을 KBO로 불러낸 소속팀에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LG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팀이다. 앞으로도 평생 LG를 사랑해가며 야구에서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구단에서 힘든 시기 많이 도와주셨다”며 “저도 제 팔꿈치와 어깨를 팀에 바쳤다. 팬들이 그걸 알아주셨으니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팀이 어려운 때 은퇴를 해도 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여주셨어요.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팬들과 함께 응원해가며 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울지는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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