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트넘의 변화 없는 선수단 구성과 공격 전술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주포인 해리 케인에게 집중된 공격루트는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어떠한 영입도 하지 않은데 따른 한정적인 전력이 밑바닥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케인은 자신의 징크스로 대표되던 8월이 넘어섰음에도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부임 이후 큰 위기가 없이 꽃길만 걸었던 토트넘이 가장 큰 고비에 직면했다.
토트넘은 19일(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란의 쥐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2018-2019 유럽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리그 1차전 인터밀란과의 원정경기에서 1대 2로 역전패했다. A매치 직전 열린 지난 3일 왓포드전에서 1대 2 충격패를 당한 후 15일 리버풀에도 일격을 맞은데 이어 어느덧 3연패다. 포체티노 감독 체제에서 처음 당한 3연패라 그 충격은 더하다. 케인은 전 경기 선발 출전해 사실상 풀타임을 뛰었지만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토트넘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의 후유증을 떨쳐내지 못한 탓일까. 케인은 부진 징크스로 대표됐던 8월이 넘어섰음에도 시즌 초반 둔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대 수비수와의 공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월드컵 3-4위전까지 소화하고 매 경기 풀타임을 뛰다시피 하는 케인에게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케인을 비롯해 얀 베르통언과 키어런 트리피어,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 토트넘 주전 선수 대부분은 매 경기 선발 출전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대표팀에서도 주축을 차지하는 선수들로 2018 러시아월드컵뿐만 아니라 9월 A매치 일정까지도 소화하고 왔다. 박싱데이도 오지않은 시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체력 안배에 염려가 잇따르는 이유는 그래서다.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늘어나는 대회에 따라 이들의 체력적 한계가 노출될 것은 자명하다.

◆ ‘철밥통’ 케인과 에릭센, 알리…경쟁없는 그들
케인은 토트넘에서 어느 덧 8년차를 보내고 있는 고참이자 베테랑이 됐다. 팀의 중핵으로 올라서며 본격적인 주축으로 활약한 지 5년째다. 포체티노 감독이 발굴해낸 최고의 잉글랜드 스타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토트넘 내에서 케인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그가 현재의 절대적 입지를 가질만한 자격과 근거는 충분하다. 케인은 지난 세 시즌간 30골 이상의 득점을 터뜨려줬다. 팀의 경기력이 마치 늪에 빠져 발을 묶인 듯 최악의 상황을 헤맬 때도 케인의 개인능력으로 만들어낸 골 덕에 승리를 챙겨가는 일 역시 빈번했다. 팀 득점의 40% 이상을 책임져왔다.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에릭 라멜라가 팀 밸런스를 이유로 더 중용 받았던 것 역시 케인의 득점력에 기댄 탓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그렇지 않다.
특히 1대 2로 패했던 지난 리버풀전에선 풀타임을 누빈 케인의 볼 터치가 22번에 불과했다. 선발 출전한 22명 중 최하위다. 사실상 경기 내내 안개 속에 감춰진 듯 존재감이 없었다는 뜻이다.
리버풀전뿐만이 아니다. 최근 토트넘의 경기들을 보면 케인이 최전방에서 상대의 밀집수비에 고립된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왓포드 역시 중원 싸움에서 상대 2선 공격수들의 빌드업을 방해하며 공격의 물꼬를 측면으로 틀게 했다. 왓포드의 포백 수비진들은 토트넘의 예상 가능한 단조로운 측면 공략에 잘 대응해냈다. 결국 좀처럼 공간을 만들지 못한 토트넘의 공격진은 단 2개의 유효슈팅만 기록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케인에게 공격루트가 집중되는 토트넘 빌드업 축구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양쪽 윙백들이 측면 공격상황에서 올려주는 단순한 크로스 역시 패턴이 읽혔다. 포체티노 감독의 첫 3연패는 절대 불운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케인을 향한 포체티노 감독의 무한 신뢰는 여전하다. 항상 토트넘의 1옵션으로 존재하며 붙박이 주전이다. 2선 자원인 델레 알리와 에릭센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밀란전에서 케인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에 포체티노 감독이 “미친 생각”이라며 분노했을 정도다. 그들에겐 경쟁이 없다. 체력적 한계를 겪고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더라도 그들은 변하지 않는 1옵션이다. 인플레이션이 매년 가속화되는 유럽 축구의 이적시장 흐름 속에서 단 한 명의 선수 영입도 하지 않는 ‘제로 사이닝’이란 무모한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뜻이다.
케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페르난도 요렌테와 빈센트 얀센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얀센은 완전히 전력 외로 분리된 상황에서 발 부상까지 당하며 약 2개월간 출장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시즌아웃이다.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을 떠날 것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유일한 해법은 포체티노 감독의 전술적 역량과 리저브팀에서 새로이 1군으로 올라온 어린 선수들로 그러한 부족함을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 루카스 모우라와 손흥민, 케인의 파트너는?
포체티노 감독은 전술 옵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 첫 번째 시험대로 올랐던 주인공이 바로 루카스 모우라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보강이 없던 만큼 기존 선수단에 없던 새로운 드리블러인 모우라를 최대한으로 활용해보겠다는 계산이었다. 포체티노 감독은 모우라를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놓아 2선과의 연계를 통해 특유의 경쾌한 움직임을 가져갈 것을 주문했다. 모우라로 인해 공격의 활로가 트인다면 케인에게 집중된 수비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만큼 모우라를 인터밀란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 선발 출전시키며 다양한 역할을 주문했다. 케인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을 찾기 위해서였다. 첫 개막전인 뉴캐슬전에선 모우라는 4-2-3-1 포메이션에서 측면 공격수로 나섰고, 풀럼전은 케인과 함께 투톱을 이뤘다. 맨유전에선 에릭센, 알리와 함께 2선에서 호흡을 맞췄으며 1대 2로 충격패를 당했던 왓포드전에선 3-1-4-2 포메이션으로 케인과 함께 최전방에 섰다. 리버풀전에서 역시 4-4-2로 케인과 함께 공격의 중심에 섰다. 포체티노 감독이 모우라 활용을 두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우라는 지난 시즌엔 6경기에 출전해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시즌엔 자신을 향한 포체티노 감독의 신뢰에 어느 정도 보답했다. 인터밀란전에서도 비록 팀의 패배에 빛을 바랬지만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후반 19분 선발 출전한 손흥민과 교체되며 제한된 시간만 뛰었음에도 수차례 찬스를 만들어내며 인터밀란 수비진들을 괴롭혔다.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직접 문전으로 파고드는 적극성까지 보였다. 아시안게임 일정을 마치고 복귀한 손흥민과 불꽃 튀는 주전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손흥민은 모우라와는 다른 장점을 지닌다. 모우라가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공격의 유연성을 더해주는 선수라면 손흥민은 보다 측면 공격에 힘을 싣는다. 토트넘 윙백들이 측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토트넘을 상대하는 많은 팀들이 중원 빌드업을 방해하기 위해 중앙을 두껍게 하는 밀집형태의 수비전술을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손흥민의 파괴력은 배가 된다.
포체티노 감독은 지난 컵 대회에서 2선 라인에 손흥민을 왼쪽, 모우라를 오른쪽에 두며 공존 가능성을 실험한 바 있다. 당시 둘은 준수한 호흡을 보였지만 이후 함께 선발로 나서는 경기는 보기 힘들었다. 현재까진 둘의 공존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어느 선수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해낼 수 있을지에 따라 주전 경쟁의 승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선수단이 얇은 토트넘에서 그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토트넘이 당장 케인과 에릭센, 둘 중 하나가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결장이라도 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알리 역시 마찬가지다. 리버풀과 인터밀란을 상대로도 스위칭 플레이가 잦은 토트넘 공격 속에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난 알리의 부재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에서 중앙을 버티고 있던 핵심 기둥이 빠져버린 꼴이다.
토트넘은 경쟁이 없었기에 대안이 없고, 대안이 없기에 변화가 없는 팀이 돼버렸다. 포체티노 체제에서의 첫 3연패는 팀의 황금기 종말을 알리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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