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영화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정호승 시인의 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의 한 구절. 검은 화면에 덩그러니 적힌 글자들이 뭉근한 여운을 남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이 이와 같을 테다.
13일 개봉한 ‘봄이가도’(감독 장준엽 전청하 전신환)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극영화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생존자, 아내가 떠난 뒤 삶의 의욕마저 잃은 남편. 각 25분 분량의 단편 세 편을 한데 묶었다.
엄마 신애(전미선)은 사고가 난 지 2년이 흐르도록 딸(김혜준)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상원(유재명)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고생을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일 괴로워한다. 일상 곳곳에서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는 석호(전석호)는 점차 폐인이 되어간다.
각각의 스토리는 단조롭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작품 속 세 사람은 딸의 환상, 여고생이 등장하는 꿈, 아내와의 과거 기억에서 각각 치유를 얻는다. 이들이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한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온전히 이별할 시간’이었던 셈이다.

영화는 시종 차분하고 담담하게 전개된다.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법도 없다. 유려한 연출보다는 진정성 있는 태도가 돋보인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동문인 젊은 세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마음속에 슬픔을 묻어두고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 무렵 기획·제작됐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기획 자체가 쉽지 않았으나 제작진은 두려움을 모르고 뛰어들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기록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감독들의 대학 선배인 배우 전석호가 합류해 전미선 유재명 등의 캐스팅을 이끌었다.
흔쾌히 출연 제안을 수락했다는 유재명은 “각자 자기의 신념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배우들도 각자의 이유로 연기를 하는데, 이 영화는 배우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75분. 12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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