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김학범이 벤투에게…AG가 남긴 유산

Է:2018-09-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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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각) 오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한민국과 일본의 금메달 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둔 손흥민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가 한국이 우승의 영예를 차지하는 것으로 17일간의 여정이 끝났다. 손흥민과 이승우, 황의조와 황희찬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더 이상 병역 문제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국내 K리그 복귀 걱정 없이 자신들의 선수 커리어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됐다.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려 할 경우 상주 상무(국군체육부대), 아산 무궁화(경찰청)에 입단해야 한다. 이 경우 ‘K리그에서 6개월간 뛰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따라서 이적을 통해 K리그 팀에 와야 한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이 이끌었던 U-23 대표팀 선수들은 더 이상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17일 동안 7경기를 치르는 살인적인 일정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축구 팬들에게 크나큰 기쁨과 볼거리를 안겨준데 대한 선물이다.

금메달을 따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아시안게임 시작 전부터 와일드카드를 비롯해 김 감독의 선수선발을 앞두고 크나큰 논란이 일었다. 조별예선 2차전에선 말레이시아와 졸전 끝에 1대 2로 패배를 당하며 ‘반둥 참사’로 불리는 굴욕까지 당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선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살얼음판을 걷는 한끝차이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김 감독이 말레이시아에게 패한 직후 “스스로 꽃길, 시멘트길 다 놓치고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고 말한 대로였다.

한국은 그야말로 급하게 꾸린 팀이었다. 손흥민과 황희찬, 이승우 같은 여러 해외파 선수들은 소속팀 사정으로 제각각 복귀하며 호흡을 맞춘 시간이 적었다. 단 한 번의 실전경기도 소화하지 않았다. 김 감독 역시 지난 2월 대회 개막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휘봉을 잡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제대로 선수 소집조차 한번 해보지 못했다. 신임 감독에겐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녹여낼 기회가 필요하지만 대표팀에게 선수 운용과 전술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시험대가 전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 감독의 지난 6개월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훌륭하게 대회를 마쳤다. 대회 시작 전부터 선수 선발과 관련해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병역 문제가 걸린 부담감 속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과적으로 말레이시아에게 당한 조별예선 패배가 대표팀에게 약이 된 셈이다. 이 모든 것을 이끌었던 김 감독은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는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증명할 때다. 우승을 했음에도 기쁨을 만끽할 시간은 잠시 뿐이다. 다음 과제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해야한다. 선수단은 곧바로 귀국해 7일 예정돼 있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을 위한 담금질에 돌입한다. 이후 11일 남미의 절대강호 칠레와 맞대결이 예정돼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한국 사령탑에 오른 후 국민들에게 신고하는 첫 번째 무대다. 대표팀이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2년 후 도쿄 올림픽과 최종적으로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될 것이다. 그런만큼 이번 아시안게임이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게 남긴 시사점은 매우 크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이끈 김 감독이 벤투 감독에게 전달한 긍정 메시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일(현지시각) 오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한민국과 일본의 금메달 결정전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황의조가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 ‘아집’이 아니었다. 선수선발에 관한 감독의 신념

이번 김학범호의 가장 큰 적은 대중들의 불신이었다. 그 시작은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에서 약하는 황의조의 와일드카드 발탁이었다. 유럽 무대에서도 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손흥민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골키퍼 조현우의 선발에는 아무도 의문을 갖는 이가 없었으나 오직 황의조에 관해선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모두가 인맥이라 이야기했다. 이번시즌 일본 무대에서 시즌 9골을 몰아친 쾌조의 골감각도, 과거 김 감독 지휘아래 ‘성남의 왕’으로 활약했던 시절에 대해서도 그러한 냉소아래 폄하됐다. 와일드카드 선발전부터 김 감독이 황의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그동안 축구협회를 중심으로 한국축구에 만연했던 학연과 인맥 중심 발탁에 대한 불신이 고스란히 그들에게 향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자신을 향한 여론의 온갖 질타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황의조라는 예고된 패를 꺼내들었다. 이는 김 감독의 가장 자신 있는 패이기도 했다. 자신의 전술적 판단에 따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의 철학에 대해 가장 이해도가 높은 선수를 선발한 것이다. 김 감독에겐 황의조가 손흥민과 다름없었다.

김 감독의 황의조 선발에 대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황의조의 이번 아시안게임의 첫 과제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인맥논란을 지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의조는 그 이상의 활약을 해냈다. 두 번의 해트트릭을 비롯해 대회 9골을 몰아치며 압도적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조별예선 3경기를 비롯해 결승까지 전 경기 선발출전하며 김 감독의 믿음에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고스란히 보답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선 해트트릭과 함께 연장전 후반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하며 주인공이 됐다. 황의조가 없었다면 금메달도 없었다. 자신을 욕하고 비난했던 대중들을 향한 가장 값진 ‘복수’였다.

벤투 감독은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며 김학범호의 아시안게임을 모두 시청하고 분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황의조는 자신을 지켜보는 신임 감독 벤투에게 단단히 눈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벤투호 1기에도 당당히 승선했다. 그간 황의조의 A대표팀에서의 모습은 아쉬움이 남았다. 전임 감독들인 울리 슈틸리케 체제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냈으나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신태용호에서도 완전히 잊혀지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까지 탈락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지난해 10월 모로코전 이후 11개월 만의 대표팀 복귀다. 아시안게임이 그에게 가져다준 선물은 단순히 병역 혜택과 금메달만이 아닌 것이다.

대부분 축구 팬들이 황의조 선발을 두고 김 감독에게 많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감독에게 원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다. 축구협회를 비롯한 외부의 주문이나 압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이다.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국내파 감독이 아닌 외국인 감독 선임을 원했던 것이 그러한 반증이다.

◆ 벤투호 뉴페이스 김문환과 황인범, ‘철인’ 김진야

이번 대회에서 3장의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손흥민과 조현우, 황의조는 자신들이 특별한 이유를 증명했다. 그들이 있기에 한국은 한동안 이란과 일본의 약진에 밀려 잊혀졌던 아시아의 강호자리를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못지않게 대중 앞에 새로이 등장한 얼굴들도 있다. 좌우측 풀백 김진야와 김문환, 그리고 현역 군인 신분이었던 황인범이다. 지난 월드컵의 남긴 최고의 유산이 조현우라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발견한 한국 축구의 보배는 이들이다.

월드컵과 다르게 아시안게임은 17일 동안 결승까지 7경기를 소화해야하는 타이트한 일정을 보내게 된다.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염두에 둔 로테이션 가동은 필수적이다. 골키퍼 조현우 마저 송범근이 나서는 동안 휴식을 취했을 정도다. 하지만 김진야에게 로테이션은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을 대체한 마땅한 좌측 풀백자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부족한 좌측 풀백 자원에 대한 대체였다.

김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수 선발을 하는 과정에서 더 낮은 연령 대표팀까지 범위를 넓혀 풀백으로 뛸 후보 선수를 찾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이에 결국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우측 측면에서 활약하던 김진야가 포지션 전환을 한 것이다. 김진야의 낯선 좌측 풀백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그가 오른발잡이였기 때문이다. 공을 주로 위치시키는 스폿이 오른쪽이기 때문에 오른발잡이 풀백이 상대 수비수들을 이겨내고 왼쪽에서 활약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진야는 이러한 우려를 이겨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맹활약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사실상 전 경기 풀타임을 뛰며 체력적인 부담을 이겨냈다는 것에 있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휴식을 취한 시간은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 연장 후반에 교체돼 8분을 쉰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지치지않는 체력과 헌신으로 대표팀 우승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특히 그러한 그의 활약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더욱 빛이 났다. 풀타임 뛴 연장전 후반에 들어서도 온 몸을 던져 태클로 상대의 흐름을 끊고, 뒤쪽 공간을 커버하는 등 일본의 공격수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김문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측을 지배하며 중앙 수비 역시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빠른 속도로 공격 상황시에도 달려갔다. 몇 차례 보여준 날카로운 크로스 역시 일품이었다. 김진야가 보다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면, 김문환은 과거 공격수 출신답게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이번 대회에서 김진야와 김문환이 보여준 적절한 좌우 균형과 호흡은 아주 훌륭했다. 전방에서 이승우와 황의조, 손흥민이 활약할 때 보이지 않는 뒤편엔 그들이 있었다. 스리백과 포백, 여러 포지션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했다.

황인범 역시 특유의 감각적인 패스를 통해 수비 뒷 공간으로 침투하는 선수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창출했다. 김민재와 더불어 공수를 조율하며 김학범호의 빌드업 중심으로 활약했다. 자신의 백번호가 왜 ‘10번’인지 증명했다. 10번은 통상적으로 에이스와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를 상징하는 번호다. 중원에만 고정되지 않고 좌우측면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안정적인 드리블링과 볼키핑 능력을 보여줬다. 김문환과 황인범은 아시안게임 활약을 통해 생애 첫 A대표팀에 승선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신화뉴시스

◆ AG가 남긴 유산,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밝다

아시안게임이 한국 축구에 가져다 준 것은 금메달뿐이 아니다. 그간 오래 묵은 고민이었던 A대표팀의 풀백문제를 아시안게임으로 등장한 선수들로 인해 한시름 고민을 덜게 됐다. 기성용과 구자철 등 기존 주축 선수들의 대표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적인 세대교체는 벤투 감독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다.

벤투 감독은 9월 평가전 소집 명단을 발표하며 “러시아 월드컵 명단을 기본으로 하고, 최근 활약이 좋은 선수들과 향후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선수들을 소집했다”며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돼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새로운 선수들의 기량과 빛나는 발전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조망해볼 수 있었다. 창의성을 갖춘 이들은 벤투호에게 젊음과 함께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2010 남아공 대회 직후 두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2018 러시아 대회에선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에 빛나는 독일을 꺾고 한국축구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나 결과적으로 1차적인 목표인 16강 진출을 하지 못했으니 실패였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다시 올라서기 위핸 U-23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순조로운 성장세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감독의 선수단 운용방식과 선발에 있어서 보여준 신념 역시 벤투 감독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로 보인다. 병역 혜택으로 차세대 축구 인재들의 활약이 더욱 보장된 가운데 벤투 감독이 김 감독에 이어 아시안게임 일원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보는 재미가 생겼다. 분명한 것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가 됐다는 것이다.

벤투 감독 역시 남은 2022년 월드컵까지 꽃길만 걸을 순 없다. 선수단의 구성과 특색을 낱낱이 파악하고 자신만의 철학과 스타일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순간의 패배와 부진도 있을 것이다. 때론 한 순간 대중의 비난과 여론의 질타에도 직면해야 한다. 그것들을 귀담아 듣되 흔들릴 필요는 없다. 김 감독의 황의조 선발처럼, 마지막 결과로 증명하면 된다. 성장해나갈 벤투호를 향해 순간의 결과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팬들의 두터운 신뢰와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 시험대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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