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중국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등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북·미 대화와 연계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취소, 재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한·미연합훈련 재개 발언 등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무역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북·미 대화에서 속도조절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치적으로 홍보할 만한 성과가 필요하다. 선거까지 2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협상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북핵보다는 차라리 경제 쪽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에서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상당 부분 양보를 얻어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분야에서 중국과 유럽연합(EU)을 압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증시는 글로벌 무역전쟁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나홀로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 승리를 통한 중국의 대북 영향력 차단까지 함께 내다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을 떼어놓고 북·미 대화를 추진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실현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對中) 무역적자 축소와 북핵 폐기라는 고질적 두 가지 난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협상 잠정 중단을 밝히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등 대화 모멘텀은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행정부와 달리 정치와 경제를 연계해서 다루려는 성향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판단만 선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일본 등 오랜 동맹국들도 거침없이 비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의 석방을 거부하자 주저 없이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런 관점은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설을 부인하면서 “지금으로서는 많은 비용이 드는 훈련을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측은 내년부터 적용될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 협상에서도 미군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우리 측에 전가하려 하고 있다. 한·미동맹과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공약조차 일정 부분은 경제논리로 따지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대화를 연계하는 것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국을 북한 정권의 후원자로 지목하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해왔다. 이른바 ‘중국 책임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소극적인 건 중국이 뒤에서 부추겼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데 대해 견제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김 위원장의 2차 방중이 있은 후 열린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의 접견에서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두 번째 회담을 한 후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달 초 각료회의에서는 “중국 때문에 미·북 관계가 약간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하면서 “미국이 무역에서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중국이 예전처럼 비핵화 문제를 돕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실제로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절차를 방해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의 과거 비핵화 협상 태도와 비교해볼 때, 북한은 핵시설 리스트 제출, 핵탄두 조기 반출 등 미국의 요구사항이 지나치다고 보고 거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입장에서 이런 요구사항은 일방적인 ‘무장 해제’에 해당한다.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 약속의 반대급부로 핵실험장과 미사일시험장 폐쇄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건 중국 탓이라기보다는 북·미 양측 간 입장차가 워낙 컸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경우 북·미 교착 국면도 함께 해소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올해 북·미, 미·중 관계의 변곡점이 된 사건들은 시기적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 북·미 간 이견으로 ‘빈손 방북’ 논란을 빚었던 폼페이오 장관의 3차 평양 방문(7월 6~7일)은 공교롭게도 미국의 대중 1차 관세 부과 일자(7월 6일)와 겹친다. 또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결정(8월 24일)은 미국의 대중 2차 관세 부과 조치(8월 23일) 하루 만에 나왔다.
이런 점을 미뤄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3차 대중 관세 부과 예고 역시 중국의 대북 지원에 대한 경고 메시지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이달 6일 이후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 부과를 단행하겠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3차 관세 부과는 시기적으로 북한 정권창건 70주년 기념일인 9·9절과 맞물린다. 시 주석이 이날에 맞춰 북한을 방문해 북·중 우호를 과시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 위해 관세 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3차 관세 부과 대상인 2000억 달러는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액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어서 중국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끝장’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실제로 중국의 대미 수출 규모가 수입보다 훨씬 큰 탓에 관세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중국 역시도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 당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조기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경제지표는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곧 끝날 것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면서 “중국이 미국에게 북한 문제까지 양보해가면서 무역협상을 종결시킬지, 아니면 시간을 끌며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변화를 유도하려 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와 그에 따른 북핵 협상 공전이 현실화될 경우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찾아온 한반도 유화 국면은 위기를 맞을 공산이 크다. 북한이 북·미 대화에 불만을 느끼고 또다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한다면 미국도 다시 고강도 제재로 맞대응하게 된다. 2016~2017년 사이 벌어졌던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어서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북핵 문제 역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뿐더러 자칫 지난해와 같은 북·미 극한 대결 구도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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