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조장하는 전자책들이 알라딘, 예스24,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인터넷 서점은 물론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무더기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전자책들에 대한 판매중단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를 제지할 법적 근거를 찾지 못해 손을 놓고 있다.
논란은 지난 13일 트위터에서 시작됐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필리핀 어학연수 술집 여자 대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을 내놓은 알라딘에 항의해 판매중지 처리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적었다. 알라딘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서점이다. 그는 알라딘으로부터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상품이어서 판매를 중단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16일 알라딘에 확인한 결과, 문제의 전자책은 고객 항의가 반영돼 판매가 중단됐다. 알라딘 관계자는 “유통업체가 출판사에서 전자책을 제공받아 등록하면 자동으로 판매 목록에 올라가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며 “향후 부적절한 콘텐츠에 대한 항의가 들어오면 내부 검토를 거쳐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문제의 전자책을 펴낸 출판사는 ‘달빛속풍경’. 알라딘은 ‘필리핀 어학연수 술집 여자 대하는 법’을 포함한 이 출판사의 모든 콘텐츠에 대한 판매를 중단했다. 달빛속풍경은 ‘헤픈 여자 감별법’ ‘여대생과 20대 직장녀가 원하는 성관계’ ‘유부녀가 불륜에 빠지는 10가지 심리적 단계’처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편견,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전자책을 상당수 펴내고 있다.
이는 인터넷·모바일 이용자의 왕래가 높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도 진열돼 있다. 네이버는 도서 항목에서 달빛속풍경의 책 98권을 판매하고 있다. 시집 3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성행위나 불륜의 노골적인 방법을 제목과 표지에 노출하고 있다. 그 중 한 권은 ‘중년남 파트너 만들기 비법’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이었다. 남성도 예외없이 성적 대상화의 타깃으로 삼았다.
달빛속풍경의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각 인터넷 서점에서 출판사로 소개되고 있지만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는 ‘팡파르제작소’라는 다른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 달빛속풍경이라는 출판사는 등록돼 있지 않다”며 “발행처 이름을 다르게 적는 방식으로 문제의 전자책을 등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빛속풍경의 콘텐츠를 각 인터넷 서점으로 유통하는 업체는 별도로 존재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출판사로부터 콘텐츠를 넘겨받아 서점에 제공하는 유통사로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논란에 대해 밝힐 입장이 없다”고 했다. 이 업체는 홈페이지나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은 달빛속풍경과 연결되는 유일한 경로다. 이 업체를 통해 출판사와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도서의 유해성을 심사하는 기관은 간행물윤리위원회. 하지만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조장하는 책을 판매 금지 조치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손을 놓고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관계자는 “혐오나 편견, 성적 대상화를 조장하는 책을 제지할 심의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간행물에 대한 법적 규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다만 문제의 전자책들처럼 특정 계층에 대한 편견, 혐오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문제제기를 수렴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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