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생후 12개월 만에 죽음을 경험했다. 첫 생일 이틀 뒤인 지난달 13일 심장이 2분30초간 멈췄다. 탈수증상을 보여 데려간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의사는 아이의 심장이 이미 부풀어 오른 상태라고 했다.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의료진은 엄마의 절규에 쫓기듯 온 힘을 다해 응급처치를 했다. 도중에 심정지가 왔다. 의사가 빠르게 대처해 아이를 살려냈지만, 희귀 난치병인 ‘특발성 확장성 심근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엄마는 난생처음 들어 본 병명이었다.
유병률 ‘1000만 분의 18’인 희귀병… 유지비만 매달 1000만원
노은겸(1)양은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15개월 먼저 태어난 친오빠가 짓궂게 괴롭히면 꽉 물어버릴 만큼 의사표현이 확실했다. 오빠보다 미끄럼틀을 더 많이 타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활달한 아이였다. 은겸양 어머니 최해은(34)씨는 “모험심 많고 애교가 넘치는 아기였다”고 말했다.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은겸이의 놀이터는 흙바닥 대신 병실 침대가 됐다. 은겸이가 진단받은 병은 심장 근육이 운동하지 않아 심실이 부푼 상태로 서서히 멈춰가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소아 10만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 확률로 발병한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완치는 없다. 10년마다 한 번씩 심장을 이식받아야 한다. 은겸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생 인공 심실보조장치를 신체 외부에 달고 지내야 한다.
그나마 이 장치가 국내에 없다.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가격이 1억원에 달한다. 유지비로 석 달에 한 번씩 30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장치 이름은 ‘베를린하트’. 희귀한 의료기기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은겸의 부모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최씨는 “남편과 저 모두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편이지만 둘이 합쳐 한 달에 100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를 번다. 매달 몇 백만원을 빚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큰 아이 교육비·생활비 등이 추가로 들어간다”며 “실제 빚지는 금액은 더 크다”고 했다.
또 “부부 급여가 평균이다 보니 한국심장재단 지원도 받지 못한다”면서 “한 명이 휴직하더라도 한 달 유지비 정도만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은겸이는 지난달 23일 심장과 이 장치를 연결하는 수술을 7시간에 걸쳐 받았다. 현재 많이 건강해졌다고 한다. 장치 대여비를 한 번에 지불하는 게 아닌데도 열흘 정도 입원한 병원비가 8400만원이 나왔다. 최씨는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아예 치료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메디컬 푸어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란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반대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의료비를 지출할 수 없는 계층을 말하는 조어다. 생명을 유지하는 시간을 돈과 바꿔야 하는 이들에게 현실은 그야말로 재난이다.
심평원 “급여항목 포함 조율 중”… 최씨 “절차 너무 복잡, 고쳐져야”
최씨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19일 해당 장치를 건강보험 급여항목에 포함해 달라는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같은 내용의 민원도 여러 차례 넣었다. 최씨는 청원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하려는 제 예쁜 딸을 꼭 살려달라”며 “부디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검토해 달라”고 호소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소아용 양심실 보조장치는 지난해 12월, 단심실 보조장치는 올해 2월에 처음으로 보험등재신청이 됐다. 심사 기간은 사안에 따라 달라진다. 이 장치의 경우 고가인 데다가 희귀 장비이기 때문에 여러 전문가와 학계 의견을 수렴해 비용 산출 부분을 조율하고 있다. 논의가 완료되면 최종적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3일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이 장비는 외국에서도 굉장히 비싸다. 어려움이 많지만 서두르고 있다”며 “어느 정도 의견이 취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겸양 사연까지 알려졌고, 그래서 일정을 더 앞당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법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케어’가 추진된 지 1년째다. 미용·성형 등 항목을 제외하고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해준다면서 이처럼 생명과 직결된 문제는 왜 신속히 해결이 안 되느냐. 너무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케어는 3800여개 비급여 항목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급여화해 개인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책이다.
은겸이 사연은 최근 여러 네티즌의 관심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아직 만 1세밖에 안 된 은겸이가 희귀 난치병을 앓고, 큰 수술까지 받게 된 것에 마음 아파했다. 급기야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말 조금밖에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글을 지난 2일 게시했다. 최씨는 “곧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은겸이 상황을 전하는 글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신혜지 인턴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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