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11년 만의 폭염에도…” 여전히 손수레 미는 다산 CJ택배기사

Է:2018-08-0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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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A씨가 38도가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인 1일 '택배대란'이 있었던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물품을 손수레로 배달하고 있다.

파란조끼를 입은 그의 이마에 땀 한 방울이 흐른다. 머리는 흰색 수건으로 덮었다. 사정없이 떨어져 내리는 땀방울 때문일 테다.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워서 일수도 있다. 다른 파란조끼 남성의 얼굴은 벌겋게 익었다. 뱉어낸 숨마저 뜨겁다.

이들은 지난 4월 ‘택배대란’이 있었던 다산신도시 택배기사다. 한반도 최고기온이 111년 만에 경신된 1일, 경기도 남양주 다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택배기사는 여전히 손수레로 물품을 배달하고 있었다. 이날 다산동 기온은 38도를 넘나들었다. CJ대한통운 소속 A씨는 1615세대나 되는 이곳 택배를 혼자 배달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B씨는 퇴근 후 잠시 들른 거라고 했다.

◇기록적 폭염인데… 손수레 끌다 현기증 나기도

A씨는 오후 1시쯤 아파트 정문 주차장에 택배차량을 세웠다. 지하주차장이 있지만 층고가 낮아 택배차는 진입이 불가능했다. 그는 익숙한 듯 차에서 내려 주섬주섬 물품을 손수레에 실었다. 정문 주차장부터 아파트 건물까지 거리는 128m. 할당된 택배를 다 배달하려면 이 거리를 20~30번씩 왕복해야 한다.

A씨는 이 아파트에 일주일 내내 출근한다. 근무시간은 하루 7~8시간 정도다. 때에 따라 동료 택배기사가 함께 출근하지만 이날은 A씨 혼자 물량을 다 돌려야 했다. 택배량은 매일 평균 180개, 많을 땐 200개에 달한다. 분주히 움직이는 A씨에게 곁에 있던 아파트 경비원이 “고생 많네. 오늘 이거 다 돌리면 얼마나 받아?”라고 물었다. A씨는 한숨 토해내듯 “35만원이요. 일하는 거에 비하면 적지”라고 푸념했다. CJ대한통운 측에 따르면 기본 수수료는 건당 800원이지만 그날 물량에 따라 일당이 달라진다.

얼마 전에는 현기증이 와 쓰러질 뻔했다고 한다. ‘쿨매트’처럼 부피가 큰 품목을 들다가 허리나 다리에 통증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휴식공간도 마땅치 않다. 끓는듯한 시멘트 바닥에 앉아 숨을 돌리는 게 전부다. 할당된 택배를 전부 돌리려면 아예 쉬지 못할 때도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불만이 많을 법도 한데 A씨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러려니 한다”면서 “여름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택배를 정리하고 있는 A씨.

◇말 많았던 다산신도시, 4개월 지난 지금은…

다산신도시 택배대란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된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불거졌다. 아파트 관리소장 명의로 작성된 공고문은 제목부터 황당했다.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에 (택배)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네티즌은 관리사무소와 주민이 택배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택배기사 전화 관련 대응지침이 상세히 적힌 것도 네티즌의 분노를 촉발했다. 주민들은 단지 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등을 돌린 뒤였다.

당시 국민적 공분이 일자 국토교통부가 중재에 나섰다. 택배업체가 아파트 입구까지 물품을 배송하면 노인들이 각 가정으로 배달하는 ‘실버 택배’ 도입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세금 특혜 지원 논란으로 무산됐다. 실버 택배 비용을 보건복지부가 일부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결국 택배업체와 주민들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됐다. 현재 이 단지 내에서 손수레를 사용하는 것은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들뿐이다. 다른 업체 기사들은 저상차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과 아파트 주민·경비원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A씨는 “더운 날에 힘내라고 격려해주기도 하고 김밥, 도넛, 박카스, 커피 등 먹거리도 많이 준다”며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 좀 과장돼 보도된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씨는 몇몇 주민과 평소 잘 아는 사이인 듯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한 동대표는 “논란이 된 공고문은 관리소장이 주민들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쓴 것”이라며 “택배대란 이후 아파트 측과 CJ대한통운 측이 택배기사들 불편사항을 개선할 여러 방안을 협의했다. 전동카트를 사용하는 방안도 논의된 바 있다”고 밝혔다. 현재 입주자대표회장직이 공석이라 협의가 잠시 중단됐다고 한다. 입주자대표회장직은 다음 주 중으로 선출될 예정이다.

주부 C씨는 “오늘같이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도 택배기사님들이 주민들을 위해 일하시는 모습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D(18)양도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이 더위에 매일 배송하는 모습 보면 안쓰럽다”면서 “집에 배송하러 오실 때마다 음료나 먹거리를 드린다”고 했다.

경비원 이윤구(63)씨는 “택배기사 대부분이 고정적으로 이 아파트에 출입하기 때문에 주민과 가까운 사이다”라며 “고생하는 택배기사들한테 그런 식(언론에 나온 식)으로 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A씨가 택배를 손수레에 싣고 있다.

◇CJ만 지상 배달… 배송료 인상 건의했지만 무산, 전동카트 도입될 수도

주민들은 택배대란 사건이 불거진 뒤 택배기사들의 고충을 감안해 배송 수수료를 건당 100~150원씩 올려 지불하겠다는 의견을 CJ대한통운 측에 전달했다. 크게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니 고생하는 택배기사들의 수익을 조금이라도 높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결국 무산됐다고 한다. 동대표는 “당시 CJ대한통운 측이 특정 지역만 수수료에 차등을 주는 건 다른 지역 담당 택배기사들 입장도 있어 곤란하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지하 출입구 높이에 맞춰 택배차량을 개조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비용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 동대표는 “몇몇 주민이 반대했다”면서 “CJ대한통운 측에서도 300만원이나 되는 차량개조 비용을 택배기사가 부담하게 했다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 측은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수료 인상 문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공식적인 논의가 아니었다”며 “저희가 난색을 보인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손수레에 문제 관해서도 전임 입주자대표회장과 원활하게 협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석이 되며 잠시 중단된 것뿐이다. 전동카트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양측 다 좋은 감정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크게 없다. 그냥 이 더위만 좀 수그러들면 좋겠다”고 답했다. 전동카트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일이 더 수월해질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몇몇 이기적인 주민들 때문에 일하기 싫을 때도 있다”며 “대놓고 ‘그건 택배기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면박 준 주민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 살짝 반감이 남아있긴 하다”고 털어놨다.

글·사진=박은주 기자 이진민 인턴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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