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정부가 연일 강경한 반(反)난민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 사제들은 난민을 보호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분간 난민 수용을 두고 이탈리아에서 정부와 가톨릭 신부 간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로마 시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권고를 무시하고 집시 4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로마 북부 외곽의 집시촌을 강제 철거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2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비르지니아 라지 시장은 “빈민가를 형성하는 곳에 더 이상 재정 지원을 할 수 없다”며 “이곳은 전기와 수도도 설치되지 않는 등 어린이들의 권리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며 폐쇄를 단행한 이유를 밝혔다. 일부 집시들은 “인종차별주의자”이라고 외치며 반발했다.
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 겸 부총리는 그간 난민과 집시 등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는 정책을 펴왔다. 살비니 장관은 지난 6월 “집시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조사를 한 후 법적 권리가 없는 외국인 집시의 경우 다른 나라와의 합의를 거쳐 송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 3월 총선 때는 난민 추방과 불법 집시 정착촌 철거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이탈리아는 최근 난민구조선 입항도 잇달아 불허했다. 이달 초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에서 나무배를 타고 시칠리아 인근 해역에 도착한 난민 451명의 입항을 두고 몰타와 떠넘기기를 지속했다. 지난달에는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와 라이프라인호, 오픈암스호의 입항을 거부한 바 있다. 지난 25일 유럽연합(EU)이 회원국에게 난민 1명을 받아들일 때마다 6000유로(약 79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발표에도 “우리는 자선 지원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며 반대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난민 1명 당 세금 4~5만 유로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가톨릭 사제들은 이같은 반난민 정책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다. 이탈리아 가톨릭 잡지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기독교 가정)’는 최신호 표지에 ‘살비니는 물러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25일 공개했다. 중세 가톨릭 교회의 퇴마 의식에서 사용되던 문구인 ‘사탄아 물러가라’를 인용한 것으로 살비니 장관을 사탄에 비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잡지는 “개인적이거나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복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달 초에는 루이지 초티 가톨릭 신부가 수도 로마를 포함해 토리노, 람페두사섬 등에서 반난민정책에 대항하고 난민들에 대한 연대를 표하기 위해 집회를 기획했다. 초티신부는 집회에서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떠밀려온 3살 아이 아일란 쿠르디를 상징하는 붉은색 티셔츠를 입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집회에서는 ‘#PORTI APERTI(항구를 열어라)’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도 등장했다. 초티 신부는 “붉은색에는 (반난민정서를) 중단하자는 의미도 있다”며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양심에 되물어야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 스폴레토에서 오랫동안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설교를 해온 잔프란코 포르멘톤 신부는 3년 전부터 성당 출입문 앞에 ‘인종차별주의자 출입 금지’라는 문구를 써 놓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난민이 100만명 이상 유입된 2015년부터 반난민정서가 본격적으로 세를 얻었기 때문이다. 살비니 장관은 트위터에 “그 사제는 밀수꾼과 테러리스트들을 좋아하는 것인가? 스폴레토와 그의 성당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쓰며 각을 세우기도 했다.
가톨릭 사제들이 반난민정책에 앞장서 저항하는 이유는 지난 3월 총선 이후 야당이 된 중도좌파 민주당이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 살비니 장관에 제대로 반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티아 딜레티 로마 사피엔차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지금 민주당은 분열돼 있고, 살비니에게 어떻게 반격해야 할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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