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진술을 위해, 8개월 동안 당했던 악몽같은 시간들 그 기억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힘에 겨워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밤에 한강에 가서 뛰어내리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유일한 증거인데, 제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겠구나.’ 그래서 살고자 지금까지 노력했습니다.“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동참한 피해자 김지은(33)씨는 27일 안 전 지사 결심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0시1분쯤 변호사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에 들어섰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성폭행·추행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에 출석한 김씨는 A4 14장 분량의 진술서를 읽었다.
김씨는 지난 3월 5일 JTBC 뉴스룸에서 처음으로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혔다. 김씨는 미투 이후 겪어야 했던 또 다른 피해와 아픔에 대해 먼저 진술했다. 김씨는 “지난 3월 6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5개월이 지났다. 그간 어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통조림 속의 음식처럼 늘 갇혀 죽어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를 힘들게 한 것 중 하나는 ‘8개월 동안 범죄를 당했던 악몽같은 시간’을 계속 떠올려야 했던 것이었다. 김씨는 “도려내고 싶은 피해의 기억들을 떠올려야 했고, 반복되는 진술을 위해 계속해서 그 기억을 유지해야 했다. 매일매일이 피해를 당하는 날 같았다”고 했다.
피해는 미투 이후에 다른 양상으로 뻗어나갔다. 통상 성폭력 2차 피해라고 말하는 어려움을 김씨는 극심하게 겪어야 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2차 피해의 고통에 대해서도 말했다. 김씨의 진술이다.
“피고인을 위해 이 법정에 나온 사람들, 그리고 피고인의 의도적인 거짓 진술들로 인해 더없이 괴로웠다. 그들의 허위 주장은 여과없이 편향돼 언론에 실렸다. 유무형으로 몰아쳐오는 피고인의 힘 앞에 저와 함께 해주던 사람들까지 두려움에 떨었고, 힘에 겨워 쓰러지기도 했다.“
피해 사실을 밝힌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저 혼자 입을 닫는다면, 모두 다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피해 사시을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제 가족이 겪는 이 고통은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조금만 더 참아볼 걸, 나만 아팠으면 되는데 지금은 모두가 아프다.”
김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증명’이 결국 김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제가 유일한 증거인데, 제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꿋꿋하게 진실을 증명하고 진심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파괴된 이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리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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