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일로 하루 18시간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 와중에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전주 시내버스 기사 허혁(53)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꾸민 듯 사진으로 도배한 감성 에세이가 아닙니다. 일과 후의 땀방울이 오롯이 묻어있는 이야기죠.
23일 전북 완주에서 전주로 가는 554번 버스. 허씨는 동료 버스기사를 볼 때마다 거수경례를 한답니다.
“신경림씨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이라는 시 구절이 있어요. 동병상련이죠. 애쓴다. 반갑다. 애써라. 밥은 먹고 다니냐. 어, 조심해라. 버스 몰고 나가서 운행하고 저녁에 들어가니까. 직장 동료라도 열흘씩 보름씩 얼굴 못 보는 경우도 많거든요.”
시끄러운 손님 탓에 혼란할 땐 라디오 볼륨을 높여 소심하게 대응한답니다.
“소리에 민감해요. 다른 승객들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막 이야기해버리고 이럴 때는 화가 나는데.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라디오 볼륨을 높여가지고 (책에서) 소리커튼이라고…. 라디오에 집중하면 견딜만하잖아요. 소심한 대응?”
그는 책에서 ‘갑이 을의 노동을 (중략)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며 따뜻한 손님도 기억했습니다.
“정류장에 있는 손님 못보고. 살짝 지나쳐서 서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와가지고 (놓쳐서) ‘미안합니다. 내가 헷갈렸네요.’ 기사도 ‘아이고 저도 제가 못보고 지나쳤습니다.’ 할 때 참 기분이 좋잖아요. 어떤 승객은 ‘아이고! 서야지 도망가냐’고 표현을. 그럴 때 속상해요.”
“대한민국 모든 감정노동자의 가슴에 명찰 대신 ‘감정표시등’을 달아주는 상상을 한다”는 문장도 인상적이죠.
“버스 2년이 넘어가면서 (하루 종일) 친절하기 힘드니까. 그 때 감정노동자들이 얼굴에 가면을 쓰게 되겠죠. 가면형 우울로 가는 거겠죠.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먹고살아야하니까 억누르고 그러다보면 병이 커지는…. 그래서 감정노동자의 가슴에 감정표시등을 달아주겠다. 그 사람 가슴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으면 고객들도 조심하겠죠. 서로 알면 갈등을 줄일 수 있잖아요.”
그는 아들 덕에 글을 쓰게 됐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데 제가 쓴 시로 어느 날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주더라고요. 글 같은 걸 써서 좀 뭔가 아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제 우리 아들이 고속터미널 영풍문고를 갔더니 아빠 책이 전면에 진열되어있더라는 거예요. 사진을 찍어서 카톡 보내왔어요. ‘아빠! 이게 연예인 보는 필이야’ 제가 아들한테 엄청 뿌듯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버스이야기지만 한 중년 아저씨의 내적 성장과정. 그런 것이 사실 더 애착이 가는 주제였어요. 사람들이 내가 책을 냈다고 하면 ‘네가 뭔, 어떻게 이런 글도 다 쓰느냐’ 놀라하더라고요.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하나 있었어. 이런 거 있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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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혁 기자, 제작=김우람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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