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아의 생명권이 먼저인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인가.
이 오랜 논쟁의 대상인 ‘낙태죄’가 다시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섰다. 24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이 시작됐다. 헌재는 형법의 낙태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지 5년8개월 만이다.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 판단은 올해 안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각각 앞세워 제기되는 합헌론과 위헌론의 논리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현재 헌법재판관 중 최소 6명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명은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족수가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한 낙태죄 폐지 청원이 큰 관심을 끄는 등 여론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어 헌재 판단에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헌재는 2012년 8월 23일 합헌 4명, 위헌 4명 의견으로 위헌정족수 6명에 미달돼 자기낙태죄와 조산사낙태죄에 합헌 결정을 내렸음. 당시 재판부는 “사익인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 낙태 의사 “태아는 母와 동등 수준의 생명이라 볼 수 없다”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는 2013년 11월~2015년 7월 임신한 여성들의 부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 시술했다는 혐의(업무상승낙낙태)로 기소됐다. 1심 재판 도중인 지난해 2월 8일 낙태죄 위헌 판단을 위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정씨는 “태아는 생존을 모체에 전적으로 의존해 모(母)와 동등 수준의 생명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태죄는 여성이 자유롭게 임신·출산하고 그 시기를 정할 자유를 제한하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수술이 가능한 임신 초기에도 수술을 막아 임산부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출산의 부담을 여성에게만 지워 평등권을 침해하는 데다, 일반인에 의한 낙태가 의사에 의한 낙태보다 더 위험한데 의사를 가중처벌하는 건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도 편다.
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낙태죄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 낙태를 포함해 모든 낙태를 처벌하고 모자보건법상 예외규정도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비현실적인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 법무부 “한 인간으로 성장할 태아, 생명권도 동일하다”
이에 법무부는 태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되며, 성장 단계의 구분 없이 생명권의 보호 정도는 동일해야 한다는 반론을 내세우고 있다. 의학 발전으로 모체를 떠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커져 임신 초기 낙태를 전면 허용해선 안 되며,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면 무분별한 낙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의사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어 일반인보다 더 중요한 책임을 가지기 때문에 가중처벌은 차별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고 예외는 모자보건법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 논리는 5년 전 낙태죄 위헌심판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재판관들은 현재 모두 교체됐다. 헌법재판소 기류는 예전과 좀 다르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임신 뒤)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이수 유남석 재판관은 “임신 초기이고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예외적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강일원 안창호 김창종 유남석 재판관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조화를 주장하고 있다. 최소 6명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지난해 9월 청와대 청원 페이지에서는 낙태죄 폐지 청원이 동의 23만명을 돌파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에 “낙태 관련 실태조사를 8년 만에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련 논의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3월 말 이 조사연구를 정부에서 수탁해 올 10월 말까지 진행한 뒤 12월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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