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적”“보여주기”… 엇갈려
북·미 정상회담서 핵 폐기 로드맵 못 박아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언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고 긴 여정의 첫걸음을 뗀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의 핵실험장 폐쇄 및 현장 공개 언급은 결국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제 조치를 취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카드로도 해석된다.
북·미 간 가장 최근의 비핵화 합의인 2012년 ‘2·29 합의’를 보면 ‘북한은 북·미 고위급 회담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임시중지(모라토리엄)한다’고 돼 있다. 북·미 회담을 유지하고 성과를 내기 위한 여건 중 하나로 핵실험 중단이 명시된 것이다. 2·29 합의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미측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은 비핵화 대화의 초기단계 합의로 평가된다.
김진무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29일 “핵실험 중단은 북·미가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지, 어떻게 핵을 폐기할 것인지 정하는 본협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북한의 핵 폐기 의사가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대화를 하고 있는 단계”라며 “핵 실험장 폐쇄로 핵실험 중단의 진정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은 남북 정상이 공동의 목표로 확인한 완전한 비핵화의 출발점이자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6차례 실험으로 핵 능력을 입증한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회의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그로부터 2개월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쇼’로 끝난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때와 마찬가지로 ‘보여주기’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는 핵 폐기 로드맵 합의 여부에 달릴 전망이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남은 약 한 달간 양측이 큰 틀에서 핵 폐기 시한과 실행계획, 사찰·검증 방식, 단계별 보상책에 합의해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마주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핵 폐기 로드맵에 구체적인 시한과 이행 계획이 담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5년 북핵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가장 큰 한계 역시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9·19 공동성명에서 비핵화 원칙에 합의하고도 후속 조치(2007년 2·13 합의)가 나오기까지 1년5개월이 걸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을 빌미로 북한에 시간만 벌어줬던 과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핵 폐기를 검증하고 사찰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뿐 아니라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까지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폐기하고 검증할 것인지는 비핵화 협상의 최대 난제로 꼽힌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 사찰단을 보내 핵 폐기를 검증하는 건 2∼3년 내에 끝나는 과제가 아니다”며 “이는 북·미를 넘어 6자 등 다자 합의에도 포함시켜 정권이 바뀌어도 강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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