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일정을 거부한 채 사실상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요즘 무척 바빠졌다. 야당이 된 뒤 여러 차례 ‘보이콧’과 ‘장외정치’를 벌였지만 이번엔 양상이 좀 특이하다. 매일 어딘가로 달려간다.
지난주에는 19일 서울경찰청 앞에 몰려가 입장을 밝혔고 20일 청와대 앞에 가서 회의를 열었다. 24일에는 ‘드루킹 사건’ 현장인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에 가더니 25일 경기도 성남의 네이버 본사 앞으로 갔다. 모두 ‘비상의원총회’란 이름이 진행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 체제의 제1야당은 이처럼 ‘현장정치’를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어가고 있다. 특정 이슈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논쟁의 수위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드루킹 사건으로 한국당은 문재인정부 출범 1년 만에 대여 공세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의원들의 집단행동과 현장행보를 통해 이를 최대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 김성태 “현장의총, 전원 참석 바란다”
한국당은 장외투쟁 8일째인 이날 오전 드루킹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포털사이트 네이버 본사 앞에서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네이버의 책임을 묻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작년 대선 댓글조작 묵인·방조 네이버에서 현장의총을 개최한다"며 "전원 참석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경찰청, 청와대,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에 이어 성남의 포털사이트 본사까지 한국당의 현장의총 반경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드루킹 여론조작의 배경에는 댓글 조작을 가능하게 한 네이버의 시스템 문제도 있었다"며 "알고도 방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론조작에 대한 네이버의 관여성을 배제할 수 없어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 개선 사항을 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24일 파주에 갔었다. 느릅나무 출판사 앞에서 열린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달빛기사단’도 매크로(동일작업 반복) 프로그램을 활용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대화방 내용을 제보 받았다”며 “경공모와 달빛기사단이 매크로를 통해 경쟁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서다가 그 한 축인 드루킹이 적발된 것으로 보인다. 달빛기사단의 여론 조작 의혹도 특검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홍준표 “포털 뉴스·댓글 규제해야”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지난 23일 ‘한국갤럽 및 포털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실제로 고생하고 노력한 기자나 언론사는 이익이 없고 포털이 그 이익을 다 취하고 있다"며 "앞으로 포털이 기자 한 명 없이 뉴스장사를 하며 광고나 부를 독점하는 것을 막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포털업체의 뉴스 제공 및 댓글 작성 방식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당은 댓글 조작 사건(드루킹 사건)의 근본적 원인에는 포털업체의 뉴스 제공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현재 국회에는 포털 규제 법안 19건이 제출돼 있다. 댓글 조작에 따른 여론 왜곡을 원천 봉쇄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언론사와 포털에 유통되는 기사의 댓글을 조작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또 댓글 조작자는 물론 배후세력도 함께 처벌하도록 했다. 언론사와 포털업체에는 댓글 조작 방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도 부과해 무거운 책임을 지웠다.
박대출 한국당 의원이 지난 19일 제출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여론 조작 등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게시글이나 댓글을 작성하지 못하도록 했다. ‘제2의 드루킹’ 발생을 막겠다는 취지다.
송석준 한국당 의원이 23일 발의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 개정안은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로 연결되도록 하는 이른바 ‘아웃링크’를 의무화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한 의원은 “국내 포털업체가 고집하는 ‘인링크’ 기사 전송방식은 해당 포털사이트 내에서만 기사와 댓글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여론이 특정 집단에 의해 순식간에 조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또 포털업체의 뉴스 배열 알고리즘을 공개하는 내용의 신문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 공직선거 기간 중 실시간 검색 순위나 기사 댓글 순위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제출돼 있는 상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선거기간 중에는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집중적으로 반복 검색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국회 내 법안 논의 과정은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드루킹 사태로 인해 여야가 임시국회 의사일정도 합의하지 못하면서 이런 법안들은 4월 들어 상임위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