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탓에 자꾸만 건망증이… 내 머릿속의 ‘영츠하이머’

이은솔(27·프리랜서) “숨 쉬는 것 같이 잊어버리니까.”
최정민(25·취업준비생) “머릿속이 하얘지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안 들리는”
박세령(21·대학생) “방금 무슨 질문 하신 거죠?”
안예솔(22·대학생) “아…. 건망증이 생겨서 재미있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웃음)”
이은솔(27·프리랜서) “하아….(한숨)”


취업·직장·결혼·학점. 스트레스 탓에 청년들이 건망증에 시달립니다. 자조적으로 ‘영츠하이머(Young+알츠하이머)’라고 부르죠. 도대체 뭐가 젊은 사람들의 두뇌를 괴롭힐까요?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한 인터뷰 대상자는 “저는 심지어 오늘 인터뷰마저도 깜빡했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죠. 다들 무엇을 까먹었었는지 다시 물어봤습니다.

Q. 주로 어떤 것을 까먹나요?

이은솔(27·프리랜서) “화장품, 틴트…. 가장 많이 잃어버립니다. 노트북 같은 것도 어디 갔지? 집안에서 없어지면 진짜 답이 없어요. 아무 데도 없어요. 진짜 다 뒤져도. 그러고 1주일 뒤에 나와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런 거지.”

안예솔(22·대학생) “카드? 제가 최근에 카드를 한 두세 번을 잃어버렸었어요. 또 태블릿 펜 같은 것도….”

최정민(25·취업준비생) “콘센트 같은 거 안 빼고 나가는 거…. 약속을 캘린더에 적어놓지 않으면 아예 까먹는…. 아예 몰라요.”

박세령(21·대학생)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 동물병원이라 프로세스 잘 지켜야하는데 순서 같은 게 기억이 안 나요.”

이들은 건망증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한 적도 많습니다.

Q. 건망증 때문에 겪었던 황당한 경험은?

최정민(25·취업준비생) “고데기 (코드) 안 빼고 나가서 강아지가 집에 혼자 있는데 강아지가 그 주위에 가서 발이 화상 입을 뻔 했다든가, (카페에서 옷 벗어두고) 저건 내 옷 아니다. 저 옷은 초면이다. 심지어 이런 적도 있었어요. 이빨을 닦았거든요? 근데 15분 뒤에 이를 닦았는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또 닦았어요.”

이은솔(27·프리랜서) “연속 3일 동안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에도, 정말 바로 근처로 장소를 옮겼는데 핸드폰이 없는 거예요. 카페 전화하고 화장실 다 뒤져보고 손님들 괜히 이렇게 막 기웃기웃하고. 알고 보니 친구 주머니. 그 친구도 당황 나도 당황”

안예솔(22·대학생) “한 번은 친구가 너무 힘들어서 야채곱창 먹자고 해서 제가 너무 당당하게 “아 그러면 내가 계산할게 야채곱창” 카드 잃어버려서 계산 못하고 이런 적도 있었고”

자꾸 깜빡깜빡하는 건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원인은 스트레스. 세상이 우릴 이렇게 만든 겁니다.

이은솔(27·프리랜서) “공연비 같은 것도, 원래는 저희가 공연하면 물어보지 않아도 줘야하는 게 맞는 거잖아요. 한 달 넘게 밀려본 적 있어요. 일주일마다 전화를 했어요. 저희가 잘못하는 거 아닌데 되게 돈 달라고 하는 것 같잖아요. 한 30만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300만원도 아니고. (3억이면) 조금 조용히 할 수 있다. 그 정도면.(웃음)”

안예솔(22·대학생)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다른 반 선생님들이 (수업이) 딜레이가 됐을 때 대리 수업을 한 적도 있었고, (학원) 이사비용을 절약한다고 (이삿짐센터 대신) 선생님들을 써서 하기도 했고, 이런 걸 말해도 되나.(웃음)”

최정민(25·취업준비생) “취업준비 하는 상황에서 점점 기준이 낮아지니까, 나는 여길 가기 싫은데 여길 가야하나 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잘 됐을 때 너무 축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왜 지금 취업 준비생인지….”

박세령(21·대학생) “동물병원에서 아르바이트 했는데, 원장님이 계속 일 못한다고 눈치주고. 저한테 뿐만 아니라 제 사수한테도 ‘네가 이렇게 가르쳤냐고’ 다그쳐서….”

건망증을 극복하고자 이들은 궁여지책으로 메모와 알람을 생활화 했습니다.


안예솔(22·대학생) “노트 위젯이 붙어있는 어플리케이션에 그때그때 적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어요. 페이스북에 미리 비공개글 같은 걸 올려서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 쓰곤 해요.”

이은솔(27·프리랜서) “일단 포스트잇으로 할 일을 붙여놓은 거랑 ‘내가 이걸 무조건 이 시간에 해야 돼’ 하면 시간마다 내용을 적어서 알람을 다 맞춰 놔요. 매일매일. 그렇게 안하면 다 까먹어요.”

건망증 때문에 고생하는 청년들은 같은 영츠하이머 동지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Q. 영츠하이머 동지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은솔(27·프리랜서)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스트레스 받아서 까먹는데 까먹으면 또 그게 나한테 스트레스로 돌아오니까. 이 사이클이 무한 반복된다고 해야 되나. 조금 마음을 놨으면 좋겠어요. 뭐 어떡해요. 내 손을 떠난 거니까 다시 내가 가져올 수 없는데.”

최정민(25·취업준비생)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 가장 급선무겠죠. 일상생활에 불이익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해야 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건망증이 바로 치매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건망증을 넘어 만성피로 우울증 수면장애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건망증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스스로 힘든 일은 없었는지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카카오 친구맺기] [페이스북]
[취재대행소 왱!(클릭)]

고승혁 기자, 제작=김우람 인턴기자 marquez@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