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부 “영업비밀 판단 우리영역 아냐”
고용부 “산업부 자료 못 받아 논의 못해”
문제 해결은커녕 서로 책임 떠넘기기
산재 입증해야할 노동자·유족 막막
불확실성 해소 안된 삼성전자도 부담
삼성전자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 공개’가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당초 논란은 지난 2월 대전고법 판결을 토대로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의 각 공장 보고서 공개를 결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제기한 다른 소송에서 각 재판부가 고용부 결정에 일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발표하며 고용부와 엇박자를 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부부처들은 ‘폭탄 돌리기’를 하듯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이 정보공개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산업부의 판단영역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고서 내용에 산업경쟁국이나 경쟁기업으로부터 보호해야 마땅한 국가핵심기술이 있다고 결론 내면서도 정작 논란의 원인이 된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산업부의 이런 입장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국가핵심기술 판단은 철저히 국가산업적인 측면과 기업의 입장에서 이뤄진다. 정보 공개로 얻을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해봐야 하는 정보공개법상 영업비밀 판단과는 결이 다르다.
산업부와 대전고법 판단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전고법은 판결문에 “설령 보고서가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었다. 법원은 전·현직 노동자의 안전·보건권 보장이라는 가치를 기술 유출에 따른 기업 손해보다 더 중요하게 본 셈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산업부 탓만 늘어놓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22일 “보고서 정보공개와 관련해 개선책이 있을지 봐야 하는데, 아직 산업부로부터 국가핵심기술 결정과 관련해 아무런 자료를 넘겨받지 못해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지난 3월 정보공개 지침을 개정하고 평택·기흥·구미·화성공장의 보고서 정보 공개를 결정했다. 다만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삼성전자와 산업계 입장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진작 절충점을 고민했어야 할 고용부가 뒤늦게 산업부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부처의 불협화음 속에 피해는 고스란히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와 삼성전자로 돌아가고 있다. 고용부의 정보공개 결정에 삼성전자는 3건의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도 제기한 상태다. 각 재판부와 중앙행심위는 지난 17∼19일 정보공개 절차를 본안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중지할 것을 고용부에 명령했다. 각 재판부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 나오든 산재 피해자 측과 삼성전자 간 입장차가 큰 만큼 대법원 최종심까지 법적 다툼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동안 산재 피해자 측은 지난한 법적 다툼을 감내해야 한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겨우 소송(대전고법 판결)에서 이겼는데, 산업부가 이를 다시 막으려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산재 입증 책임이 노동자 측에 있는데 도대체 어떤 자료로 입증하란 건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 역시 영업비밀과 관련한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동적으로 사법부의 판단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업과 피해 노동자를 모두 만족시킬 만한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산업부의 국가핵심기술 판단과 대전고법의 영업비밀 판결을 절충할 수 있도록 보고서 공개 수준을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당사자 산재 입증에 필요한 부분에 한정하는 제한 공개 방식 등으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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