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배우 이성민(50)은 남모를 속앓이를 했었다. 처음 주연한 영화 ‘로봇, 소리’(2016)로 흥행에 고배를 마신 뒤 두 번째 주연작 ‘보안관’(2017)을 내놓는 심정이 영 편치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보안관’은 보란 듯이 성공했고, 위풍당당 돌아온 그의 얼굴엔 평온함이 드리워졌다.
“그때는 절체절명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큰 역할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로였던 거 같아요. 위태위태했죠. 다행히 같이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영화를 잘 만들어주셔서 관객 반응이 좋았고, 자신감이 생겼죠. 지금은 많이 내려놨어요. 마음이 편안해요.”
신작 ‘바람 바람 바람’에서 이성민은 20여간 아내(장영남)의 눈을 피해 카사노바로 살아온 석근 역을 맡았다. 그로서는 다소 생소한 코미디 장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은 “스토리가 신선했다. 더욱이 이병헌 감독이 연출을 맡아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석근은 몸에 밴 듯이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다닌다. 하나뿐인 여동생(송지효)의 남편 봉수(신하균)까지 ‘바람’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야말로 불륜이 판을 치는 상황. 관객에 따라선 불편하게 느낄만한 지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성민은 “코미디는 코미디로 봐주시라”고 부탁했다.

“코미디의 본질은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인간관계의 불합리한 면을 끄집어내어 웃고 넘어가는 거잖아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정치 풍자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영화가 현실감 있는 정극이었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이 영화는 아예 성격이 다르거든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바라봐주시면 어떨까 싶은 거죠.”
이성민은 “영화는 판타지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거의 없지 않겠나”라며 “우리들이 아는 이야기들을 확장시켜 놓은 것이다. 요즘 유부남·유부녀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공감할 만한 감정들이 녹아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귀엽다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얘기했다.
중년의 나이에도 카사노바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던 건 이성민이 여전히 지니고 있는 남성미와 섹시함 때문일 테다. 이런 얘기에 본인은 “잘 모르겠다”고 쑥스러워했다. 그는 “평소 나는 거울도 잘 안 보고 산다. 역할에 따라 가꾸고 만들어갈 뿐이다. 그것이 배우의 숙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은 촬영 없이 집에 있으면 배가 그렇게 나오더라고요(웃음). 관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운동을 너무 싫어해요. 그래서 먹는 양을 줄이는데, 그러다 보면 ‘이 나이에 삼시세끼도 못 먹고 이게 뭔가’ 싶을 때가 있어요. ‘보안관’ 땐 탄수화물 끊고 몸 만드느라 현기증도 났다니까(웃음). 불쌍한 직업이죠.”
‘바람 바람 바람’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이병헌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스물’ 등 전작을 보고 색깔이 확실한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사를 주고받을 때 특유의 리듬감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예상을 벗어나는 독특한 디렉션을 받을 때 약간씩 당황하기도 했다.
“극 중 (신)하균이 보면 별짓을 다하잖아요. 배우가 그런 거 소화하기 쉽지 않거든(웃음).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나서 하균이랑 둘이서 ‘초반에 찍었던 신이 어색하긴 하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처음엔 몸에 힘이 좀 들어갔었죠. 아마 관객들은 크게 못 느끼실 텐데 우리 눈에는 바로 보이니까.”

네 작품째 호흡을 맞춘 신하균과는 이번에야 비로소 친해졌단다. “서로 먼저 말 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웃음). ‘브레인’ 때는 촬영 끝나고 헤어지기 바빴고, ‘카페 느와르’ 때는 한 신 만났거든요. ‘빅매치’ 때는 한 번도 마주치질 않았고요. 이번엔 제주도에서 내내 촬영을 함께했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죠.”
‘보안관’ 이후 현장 분위기의 중요성을 절실히 알게 됐다. 좋은 분위기가 작품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도 먼저 다가가려 노력한다. “나이가 드니까 노력하지 않으면 누가 먼저 다가와주지 않더라고요(웃음).” 이번 현장에서 그는 ‘대장님’이라 불리기도 했다.
“점점 변하는 게 느껴져요. 현장에서의 모습이나 인터뷰할 때의 모습이나. 성격이 많이 달라졌죠. 옛날엔 굉장히 이기적이었거든요.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많이 내려놓고 가게 되는 느낌이에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덜 꼰대스러워지는 것 같아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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