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박지주씨, 장애계 미투 나서

Է:2018-04-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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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계에서도 미투운동이 일어났다.

장애여성 박지주씨는 11일 “2002년 8월 장애이동권연대회의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성폭력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당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한 간부가 바람쐬러 드라이브 가자고 해 따라 나섰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어느 장소인지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차는 멈추었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모르나, 성폭력 피해 상황만은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갑자기 가해자가 내 앞으로 달려들어 가슴을 만졌다”며 “이를 팔로 뿌리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씨는 “다시 또 비장애남성인 가해자가 똑같은 행위를 하며, 달려드는 순간 좁은 차안이라서 더 이상 거부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자포자기 하는 상황이 됐다”며 “가해자는 자신의 신체 일부로 유사 성행위를 했고 자신은 자포자기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폭력적인 행위가 끝나고 허리를 들어서 바지를 올리고, 자크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상황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아래는 박씨가 밝힌 폭로문의 일부이다.


#미투 나는 말한다! 나는 당했다! 나는 생존자다!

지난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한국 사회가 성추행,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해 있으며, 많은 여성들이 그 피해에 노출 되있는지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어두운 밤 촛불과 같은 용기를 주었다.

많은 피해여성들은 말하지 못하고 혼자 떠안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모순들에 미투운동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가라앉아있던 폭력이 차고 넘쳐 더 이상 숨 길수 없게 된 상황임을 드러낸 사회적 현상이다.

성추행쯤이야, 성폭력쯤이야 하는 문화에서 이제 성숙된 언론의 집요한 문제제기로 피해자들이 힘을 얻어 그 피해사실을 알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성폭력은 비단 비장애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여성에게도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미투운동은 큰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 긍정적인 지지의 힘을 얻어 여기 장애계에도 미투운동을 시작하려 한다.

장애계 미투 운동을 이야기 하며

한국에서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차별과 폭력, 소외, 배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으로써 늘 성추행과 성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이다.

나는 지난 1991년 제주 지장협의 회원 발굴사업으로 장애인 단체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활동하던 장애남성 A씨가 손으로 나의 목젖을 만지며, ‘너 귀엽다!’ 하였다. 그때는 재가 장애인으로만 있다가 갓 사회로 나온 사회초년생이라, 무턱내고 나의 신체의 일부를 그것도 목젖을 만지는 행위에 무척 당황했고, 매우 불쾌했으며, 그 경험은 2018년에도 기억에 남는 기분이 아주 나쁜 경험이었다.

나의 몸에 손을 데는 그 행위자체가 매우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는 그 것자체도 기분이 몹시 상했기 때문이다. 혼자 경험으로 살아갔다.

그러다가 1998년 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1999년 학교를 다니면서 서울장애인연맹에서 청년위원장 활동을 하였다. 서울장애인연맹의 공식행사가 끝나고 단체의 회식이 있어서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회식의 뒷 마무리인 노래방에서 나오는데 B씨가 갑자기 나의 입술에 그의 입술을 갖다 댔다. 깜짝 놀란 나는 ‘나에게 왜 이러느냐 하며!’ 강하게 거부했다.

불편함과 수치심을 감출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는 몰랐다. 그러나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서울장애인연맹은 남성 중심의 조직으로 여성위원회는 그저 한 부서였으며, 이런 일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길도 없었다. 혼자 감당하고 끊어 안고 가야 하는 고통이었다. 누구에게 말을 건네 문제를 풀어야 할지, 그정도는 문제가 안돼 라고 할까봐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2002년 나는 또다시 성폭력 사건을 경험하게 됐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 소속 C씨에게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고, 과거의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이제 더 이상 폭력에 당하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장애여성단체와 함께 비상대책위를 꾸려 문제제기와 사과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비상대책위를 꾸려 운영하는 과정에서 2, 3차 가해를 경험하였다(중략).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 일뿐, 그 이상의 명예회복은커녕, 2,3차 가해가 지속되었다.
이에 더 이상 활동하기가 힘듦을 느끼고, 비폭력적인 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을 낳으면서 10년 가까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장애여성으로서 육아의 멘붕에 살아야 했다(중략).
성폭력 가해자가 나오는 부분이 삭제된 영상배포를 원하며, 생존자로써의 보호와 지지를 받고 싶다.
또한 전장연내에서 소외와 배제, 경계의 대상으로 배척하지 않을 2, 3차 가해가 없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피맺힌 가슴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시대가 와서 가슴 깊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8년 4월 8일

생존자 박지주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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