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밥그릇을 깨거나 치우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길고양이 싫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밥에 이물질을 넣는 건 밥을 주는 사람한테도 경고를 하는 거거든요.”
김하연 씨는 3일 오전 자신이 바닥에 두고 간 그릇을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길고양이를 위해 사료를 채워 두던 그릇에 고춧가루가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 고양이 사료와 고춧가루를 골고루 섞어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위에 고춧가루를 쌓아두는 ‘정성’을 보인 것이다. 그 옆에는 고양이가 사료를 먹지 못한 채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십수년 째 길고양이의 생존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밥을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길고양이들의 열악한 모습을 찍어 전시회를 열고 종종 관련 강연을 하기도 한다.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던 김씨는 미처 털어내지 못한 고춧가루와 사료가 담긴 그릇의 사진을 찍어 그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사진은 7일 자정 기준 3000개가 넘는 ‘좋아요’와 640개의 댓글이 달리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사진과 함께 “길고양이는 자기 밥에 고춧가루를 뿌려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저런 몹쓸 짓을 할 수 있겠지. 졸렬하고 소심하며 치사하다”며 범인에게 일침을 가했다. 차라리 고양이에게 밥 주지 말라는 경고문을 써붙이질 그랬냐며 “이런저런 수고도 다 싫고 그냥 애들이 밥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고춧가루를 뿌린 것”이라고도 했다.

길고양이를 향한 혐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추운 겨울 김씨가 놓아둔 고양이밥에 누군가 물을 부어 사료가 꽁꽁 언 적도 있으며 비닐에 인분(人糞)을 담아와 고양이 밥그릇에 넣어둔 사람도 있었다. 피던 담배와 가래침이 그릇에 들어있는 경우는 너무 잦아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수준이라고도 말했다.
비단 ‘사료 테러’ 뿐 아니다. 지난해 12월 16일에는 경북 김천에서 한 길고양이가 십자가 모양을 한 채 죽어있는 것을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체 옆에는 “고양이 예수ㅋㅋ”라는 조롱섞인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지난달 6일에는 대구의 한 보안업체 직원이 보안 경보를 울린 길고양이를 살해한 뒤 쓰레기장에 버려 대구시캣맘협의회가 해당 직원을 고소한 사례도 있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제2조 제1의2항에서 동물학대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 ‘굶주림, 질병 등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제8조 제2항 제4호는 누구든지 동물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동물을 학대했을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규정하는 사유가 있다면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가 있을 경우다.
하지만 김씨는 이 같은 법 조항이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를 산 채로 땅에 묻었던 경비원은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으며 2016년 길고양이 600여 마리를 잡아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 죽인 건강원 업자는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취재에 앞서 길고양이의 복지를 위해 힘쓰는 김씨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김씨는 “길고양이는 ‘복지’가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영역 동물임에도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게 생명을 빼앗길 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약체인 동물이 학대를 당하다보면 그 다음 화살은 아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승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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