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정되는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지도자들과 만나 회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인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3시간가량 중국 측과 회동한 뒤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18호실에 묵었고 베이징 첨단지역인 ‘중관촌’을 방문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방중 루트를 그대로 따라 밟았다.
베이징 소식통은 27일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전날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고위층과 회담을 가졌으며 이날 북한으로 돌아갔다”며 “최고위 인사는 남성으로 보이는데 김 위원장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중국 공산당 당국자를 인용해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최고위 인사가 김정은 위원장이라고 특정하며 북·중이 올해 초부터 김정은의 방중 시기 등을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 측은 김 위원장 방중 조건으로 북한이 핵 포기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내걸었다고 전했다.
홍콩 명보는 자체 입수한 동영상 3건과 베이징 소식통을 내세워 김정은 위원장 전용열차가 26일 오후 3시 베이징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베이징역에서 내린 북한 최고위급 인사는 중국 국빈호위대의 영접을 받는 등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았다. 다만 현장을 찍은 영상에 김 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베이징역에서 북한 인사를 태운 차량 행렬은 중국 지도자들의 집무실과 거처가 있는 중난하이로 향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 측 차량들이 댜오위타이 국빈관에 가기 전 인민대회당에 들러 3시간 동안 머물렀다고 명보에 밝혔다. 인민대회당 외에 중난하이에서도 북측 인사와 중국 지도자의 회동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고위급 인사는 베이징 도착 당일 김정일 방중 당시 항상 머물렀던 댜오위타이 18호실에서 묵은 것으로 전해져 김 위원장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베이징 시내 중심가는 이날 경비가 더욱 삼엄해졌다. 오전 댜오위타이 모든 출입구에 공안이 배치됐으며 200m 밖에서부터 통제가 시작됐다. 최고위급 인사 일행은 취재진을 피해 댜오위타이를 빠져나가 중국의 대표적 창업거리인 중관촌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관촌에선 주중 북한대사관 차량 번호판을 단 차량 행렬이 목격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5월 방중 당시 베이징 중관촌을 방문해 중국의 선진 산업현장을 둘러봤다. 따라서 최고위 인사가 김 위원장이 맞다면 ‘김정일 루트’를 따라한 셈이다.
북한 최고위 인사의 베이징 방문으로 소원했던 북‧중관계가 급속히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입장에선 북미대화를 앞두고 미국에만 의존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어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도 북한이 미국에 쏠리면서 우려되는 ‘차이나 패싱’ 가능성을 덜고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측에 만남을 긴급 타진했을 수도 있다.
량윈샹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 위원장의 방중이 사실이라면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서 여전히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김 위원장이 미·중 긴장관계를 이용해 중국으로부터 최대한 이익을 챙기려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백악관은 북한 최고위층의 방중에 대해 “북한 인사가 중국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진전됐다”고 밝혔다. 라즈 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하며 “미국은 몇 달 후에 있을 북·미 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최대의 압박 작전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서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도 북·중 간 만남이 북·미 회담이나 북한의 비핵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블룸버그 통신은 백악관과 국무부 반응에 비춰 미국이 북한 최고위층의 방중을 미리 알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무부는 최고위층 방중 여부를 묻는 블룸버그의 질문에 “중국에 물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 전문가들은 북측 최고위층의 방중이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의 멜리샤 헤넴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북한 지도부의 방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사진 찍고 돌아서게 될 북·미 회담보다 더 생산적인 만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중 간 만남은 북·미 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제임스 호아 차담하우스 연구원은 “북한 지도부가 미국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고 방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쟈크 들릴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북·미 회담에서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를 중국이 탐색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북·중 회담의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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