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10년 전 두 딸을 연달아 잃었다.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첫째는 기획사 관계자 1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일자리를 소개해 준 동생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언니를 뒤따랐다. 엄마는 ‘죽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라는 딸들의 유서를 되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딸들을 단 1초라도 다시 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눈을 떠도 아른거린다”고 했다.
최근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일명 ‘단역배우 자매사건’의 유족 장연록씨가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이 사건은 2004년 7월 동생 소개로 드라마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언니가 경남 하동의 촬영장에서 기획사 보조반장에게 성추행을 당하며 시작됐다. 보조반장은 이후 현장의 다른 관계자에게 추행 사실을 알렸고, 언니는 약 3개월간 관계자 총 12명에게 성폭행과 강제 추행을 당했다. 언니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경찰 수사에 괴로워하다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18층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 죄책감을 느낀 동생도 “엄마, 복수하고 20년 뒤 만나자”라는 유서를 남긴 뒤 엿새 뒤에 같은 장소에서 뛰어내렸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뇌출혈로 두 달 뒤 숨졌다.
떨리는 음성으로 말문을 연 자매의 어머니 장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딸이 어느 날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름을 되뇌면서 죽여야 한다고 했다. 집, 학교, 성당만 다니던 착한 딸이 갑자기 나한테도 욕을 하고 동생도 죽인다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80도 변한 딸의 모습에 놀라 차마 무슨 일인지 묻지 못했던 장씨가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 건 병원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난 뒤였다. 피해를 숨기던 딸은 “엄마, 나 성폭행당한 것 같아요”라고 털어놨다. 딸은 라이터와 칼로 위협하는 가해자들 때문에 반항도 하지 못하고 성폭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가해자들은 딸의 휴대폰을 빼앗고 “동생을 팔아넘기겠다”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장씨는 “고소를 했기 때문에 죄인은 엄마다. 고소를 안 했으면 내 딸들이 죽지 않았다”고 했다. 장씨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를 당한 딸에게 ‘가해자 성기를 그려와라’ ‘성행위를 묘사해라’고 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장씨는 “형사가 ‘이건 사건이 안 되는데 어머니가 너무 여러 번 진정서를 넣어 기계적으로라도 하겠다’고 했다”며 “딸은 너무 힘든 나머지 수사를 받다가 차도로 뛰어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 수사가 더 큰 고통이었던 장씨와 딸은 2년 만인 2006년에 고소를 취하했다. 딸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괴로워하다 결국 3년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과 남편도 연달아 장씨 곁을 떠났다. 장씨는 “자살 시도를 했는데 살았다. 너무 울어서 지금은 거의 실명 위기”라면서 “그래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장씨는 결국 1인 시위에 나섰다. 형사고소를 이미 취하했기 때문에 재고소를 할 수 없고, 공소시효가 만료돼 가해자 12명에 대한 민사소송마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장씨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장씨는 “가해자들이 아직도 업계에서 수장 노릇을 하며 떵떵거리고 산다. 몇몇은 기획사에서 일하고 한 사람은 기획사 대표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들이 유일한 유족인 장씨에게 찾아와 진심으로 사과를 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재수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다시 주목받고 있다. 3일 등록된 청원에는 19일 오후 4시 기준으로 10만7008명이 동참했다. 약 2주 뒤인 다음 달 2일 마감될 예정이다.
장씨는 “국민들이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가해자들이 반드시 업계에서 퇴출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어 “엄마이기 때문에 날마다 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너무 그립다. 죽기 1초 전까지 그리울 것 같다. 10년 전 일이지만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배현진 “창고 부당대우” 주장에 MBC 사진 공개
☞ '157cm' 단신이지만 '몸매'는 세계 최고인 모델
☞ 이명박이 바짝 붙어 질문한 여기자에게 보인 반응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