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조간신문 1면 헤드라인은 대부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소식을 다뤘다. 트럼프의 새 안보팀 분석을 톱기사로 올린 한국일보도 메인사진은 이 전 대통령의 포토라인 모습이었다. 같은 뉴스를 전하면서 신문마다 제목은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고, 이는 MB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했다.
◆ “역사에서 마지막이길”
종합일간지 9곳 중 4곳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상황이 되풀이됐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은 다섯 번째 대통령이 됐다.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았다.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는 이런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1면 제목에 담았다.
부끄러운 역사·부끄러운 뒷모습, 더 이상 되풀이 말아야 (국민일보)
이 장면, 역사에 마지막 되길… (서울신문)
MB “국민께 죄송… 역사에 마지막이 되길” (세계일보)
MB “역사에서 이번이 마지막 되길” (중앙일보)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대통령이 된 6명 중 4명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21세기 들어 당선된 대통령 3명은 모두 정권이 바뀐 뒤 검찰에 불려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독방에 수감돼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운명은 곧 결정된다. 네 신문은 ‘고질병’처럼 돼버린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악순환을 이제 끊어내야 한다는 의미로 저런 제목을 택했다.


◆ “1년 새 대통령 2명 구속되나” vs “모조리 잡아뗐다”
조선일보와 한겨례의 1면 제목은 정반대 지점에 있다. 조선일보는 전직 대통령 2명이 1년 사이 나란히 구속될 처지에 놓인 상황을 헤드라인으로 뽑았고, 한겨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 발언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는 데 주목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도 ‘MB의 부인(否認)’에 초점을 맞췄지만, 한겨레의 톤이 가장 강했다.
1년 새 전직 대통령 2명 구속되나 (조선일보)
MB, 모조리 잡아뗐다 (한겨레)
법 앞에 선 이명박 “국민에 죄송” 혐의는 부인 (경향신문)
“참담, 죄송” 10여개 혐의는 모두 부인 (동아일보)
“죄송… 역사에서 마지막 되길” 檢 출두 MB ‘가시 돋친 사과’ (한국일보)
조선일보 헤드라인의 ‘전직 대통령 2명’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뜻한다. 모두 보수 정권 이끈 인물이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자 보수 진영의 전직 대통령 2명이 함께 구속될 상황이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일보 3면 제목에는 ‘정치보복’이란 표현이 등장한다(“MB가 주범”이라는 검찰, 전 대통령 연쇄 구속엔 ‘정치보복’ 부담). 이번 수사가 정치보복이라고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가 읽히는 제목을 1·3면에 뽑았다.
한겨레의 제목은 ‘혐의 부인’을 ‘잡아뗐다’는 말로 대신했다. 한자를 우리말로 바꾸면서 표현의 강도가 한층 세졌고, 한자에 담기지 않는 뉘앙스가 추가됐다. 국어사전은 ‘잡아떼다’를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하거나 한 것을 안 했다고 하다’라고 정의한다. MB가 분명히 죄를 지었는데 안 그랬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 지지응원·동정여론 없었던 MB 출두
이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중앙지검으로 떠나는 자택 앞 골목길에는 지지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수의 시위대가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했다. 검찰에 소환되면 보수층이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그는 지지자의 환호 대신 측근의 배웅을 받으며 검찰청으로 향했다.
조간신문의 상당수가 이 같은 상황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이유를 크게 다섯 가지로 꼽았다.
열성적인 지지층이 없다는 점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당시에 이른바 ‘태극기 부대’ 등 열성 지지자들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이 전 대통령에게는 그런 열성 지지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보수 진영이 분열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허 이사는 “보수 지지층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그리고 무당파로 흩어졌기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로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일부 혐의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냐’ ‘국정 농단이냐’를 다툴 여지가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대부분 개인 범죄적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보호막도 사라졌다. 홍준표 대표는 “탈당하신 분”이라며 MB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전전(前前) 대통령이어서 국민적 관심이 덜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동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기획실장은 “박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다가 갑자기 탄핵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에 일부 보수층이 결집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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