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5월 ‘회담’은 곧 ‘협상’이다. 핵심 의제는 비핵화이고 그것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거래가 이뤄지게 된다. 실무진을 건너뛰어 양측 최고 결정권자가 첫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는 이례적인 상황이 됐다. 이 자리를 ‘주선’한 청와대는 이번 북미회담을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기존 협상과 전혀 다른 방식”
12일 오전 조간신문에는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여러 기사가 게재됐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해 달라 했다던 ‘비공개 특별 메시지’ 내용을 추정하는 기사부터 남·북·미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기준과 정상회담 이후의 로드맵을 내다보는 기사까지 다양한 분석과 관측이 실렸다.
이 이슈를 다루는 언론의 시각을 놓고 청와대 관계자는 “판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비핵화 선언→핵사찰→북미수교와 평화협정 등 흔히 생각하는 그림에 대해 그는 “북한과 미국이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다”며 “완전히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말 대 말, 행동 대 해동,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협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북미수교’ 관측과 관련해 “어떻게 보면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비핵화를 한다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수교는 비핵화가 달성되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거란 뜻이었다.
이렇게 ‘해보지 않은 게임’을 앞두고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곧 출범시킨다. 4월 말로 약속된 판문점 정상회담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아직 구축작업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청와대는 “북쪽 실무협의를 해야 하는데, 아직 시작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 남북회담은 ‘포괄적’… 북미회담은 ‘구체적’
한 달 간격으로 열리게 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당초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올리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지만 5월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의지를 확인한 뒤 북·미 정상회담에서 세부적인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는 2단계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협의를 좋만간 개최한다”며 “장관급 이상 고위급 회담으로 할지, 실무 회담을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 의제를 비롯한 제반 준비는 준비위에서 총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고위 각료들을 만난 뒤 귀국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미국과의 협의 내용을 보고받았다. 청와대는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 구상했던 남북 정상회담 의제 등 후속 조치를 원점 재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뜻을 밝힌 만큼 향후 대응도 새로운 프로세스를 구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개최되는 만큼 평화체제 의사 타진→비핵화 합의로 이어지는 2단계 구상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문제와 포괄적인 남북 협력 사업 강화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비핵화 문제는 남북 사이에서만 결정짓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지금은 단계적으로 틀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남·북·미 간 유기적인 협상을 통해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구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미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인 만큼 북·미가 핵동결·핵폐기 로드맵에 합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견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개성공단 재개 등 경협문제를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올리고, 이에 대한 제재 해제 문제를 북·미 정상회담 의제로 연계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초 정부 요청에 따라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제제 대상이었던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의 방남을 허가하기 위해 일시적인 ‘제재 면제’를 승인하기도 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남북 경협 재개는 서두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핵동결을 약속한 만큼 정상회담에서는 조금 더 진전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 문제가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처음으로 북한과 정상회담을 갖기 때문에 의제 보다는 만남 자체의 의미가 더 큰 상황”이라며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평화 구축 프로세스,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동시에 다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