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회 끝나고 팬 한 분이 울면서 말을 건네셨어요. 왜 이렇게 만날 불쌍하냐고. ‘환절기’의 용준보다 ‘괴물들’의 재영이 더 불쌍하다고. 두 작품의 색깔과 온도가 전혀 달라서 그렇게 봐주셨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배우 이원근(27)은 봄 햇살을 꼭 닮은 미소로 얘기했다. 불과 2주 만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 그이련만 지친 기색 같은 건 없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촬영한지 꽤 된 작품들이라 감회가 새롭더라. 다 같이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고 흡족해했다.
‘환절기’(지난달 22일 개봉)에서 사랑하는 친구(지윤호)가 식물인간이 된 뒤 아픔을 감내하는 소년 용준을 연기한 이원근은 ‘괴물들’(8일 개봉)에선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해가는 재영 역을 맡았다. 두 작품의 공통점을 들자면 짙은 감성을 토대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해내야 했다는 것이다.
‘괴물들’은 고등학교 내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 극 중 재영은 교내권력 1인자가 사라진 뒤 그 자리를 차지한 2인자 양훈(이이경)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그가 양훈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정신지체 장애인 예리(박규영)를 이용하면서 그 또한 ‘죄’를 짓게 된다.

배우로서 느끼는 심적 부담이 상당했다. “제가 웬만하면 힘들다는 얘기를 안 하는데, 정말 너무 힘든 거예요. 육체적인 건 버틸 수 있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강박관념 때문인지 자꾸 악몽을 꿨어요. 꿈속에서 저는 늘 맞거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손가락질 당했죠. 울면서 깬 적이 많아요.”
이원근은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상태로 있어 감독님이 ‘어디 아프냐’고 걱정을 하시기도 했다”며 “근데 저 뿐만 아니라 보조출연자들이 전부 고생을 많이 했다. 다행히 고생스럽게 찍은 장면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잘 담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보통 작품을 끝내면 금세 빠져나오는 편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환절기’ 때도 유난히 여운이 길었는데 ‘괴물들’ 이후엔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며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촬영지였던 부산에 혼자 내려갔다. 2주 정도 지내다 보니 차츰 생각이 정리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회상했다.
내적 고통에 휩싸인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 감량도 겸했다. 키 187㎝에 60㎏ 초반대 몸무게인 그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 원래 잘 찌지도 빠지지도 않는 편이에요. 근데 감독님께서 ‘갈비뼈가 보이면 좋겠다’고 하셔서 빼기로 했죠. 뼈랑 장기 무게 정도만 남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3㎏가 더 빠지더라고요(웃음).”

이원근이 ‘괴물들’ 출연을 결심한 건 오롯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학교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길 바랐다”는 그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아쉽게도 학생들이 보지 못 하게 됐다. 대신 어른들이 보고 학생들에게 손 내밀어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배경에는 실제 경험 자리하고 있었다. “제가 중학교 때 한창 일진회가 부흥하던 시기였어요. 우리 학교에도 일진이 있었죠. 저는 조용히 만화책 보고 매점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간혹 일진들의 타깃이 되곤 했죠. 그들은 ‘오늘은 너, 내일은 너’ 이런 식으로 폭력의 대상을 찾았어요. 그게 그들의 권력이니까.”
이원근은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니”라면서도 “지나고 보니 ‘어릴 때 일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더라”고 했다. 이어 “그 (가해자) 친구들도 애 낳고 잘 사는 거 보면 ‘그들도 어렸고 나도 어렸고 우리 모두가 어렸으니 그때 기억은 잊어도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생각도 바뀌더라”고 털어놨다.

2012년 ‘해를 품은 달’(MBC)로 연기를 시작한 이원근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드라마 ‘굿 와이프’(tvN·2016) ‘추리의 여왕’(KBS2·2017) ‘저글러스’(KBS2·2018), 영화 ‘그물’(2016) ‘여교사’(2017) 등을 거치며 무던히 성장했다.
이원근은 매 작품을 “배움의 연속”이라 표현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고도 했다. “만족하는 순간 퇴보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고 되새기고 공부하고 긴장하려 하죠. 채찍질을 멈추는 순간, 발전도 미미해질 거란 생각이 들어요.”
바쁜 걸음을 또 재촉한다. 차기작 물색 중인 이원근은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 ‘명당’과 ‘그대 이름은 장미’ 개봉을 앞뒀다.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힘들고 괴롭지만 막상 힘든 신을 마치고 칭찬을 받으면 그간의 설움과 고통이 다 날아가는 느낌이에요(웃음).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너무너무 행복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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