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법조계, 문화계를 넘어 대학까지 확산됐다. 서울예대 연기과 학생들이 과 내에서 벌어졌던 ‘강간 몰카’ 사건을 폭로했다.
서울예술대학교 대나무숲에 연기과 여학생 두 명의 글이 21일과 22일에 연달아 게시됐다. 두 사람은 몇 년 전 참여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오티)에서 남자 선배들의 성희롱 등 도 넘은 행동 때문에 두려워했던 일을 고발했다.
먼저 A의 글. A씨는 당시 2학년이었지만 다른 선배들과 신입생 오티에 참석했다. A씨를 포함한 선배들은 뒤풀이로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광덕공원’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고학번 선배가 A씨를 따로 불러냈다. 후배들을 놀래키기 위해 상황극을 벌여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몰래카메라’를 하자는 거였다. A씨는 싫다고 강력하게 얘기했지만 선배는 “그냥 비명 지르고 도망가면 돼”라고 했고, 선배의 끈질긴 설득에 A씨도 결국 동의했다.
A씨는 선배와 광덕공원 계단 옆 언덕에 가서 숨었다. 선배는 A씨에게 “누군가 계단으로 내려오면 비명 지르며 도망가”라고 했다. 무슨 일을 당한 것처럼 상대를 놀라게 해 반응을 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선배의 행동은 말과 전혀 달랐다. 후배 한 명이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선배는 A씨 겉옷 단추를 다 뜯고 멱살을 잡은 뒤 A씨를 바닥으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A씨는 “언덕 돌부리에 계속 등이 찍혀 너무 아프고 놀랐다”며 “그만 하라고 말했지만 선배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았다. 일어나려는 나를 힘으로 제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맘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며 “나를 지켜보던 선배, 동기, 후배 중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선배의 행동은 한참을 지켜보던 다른 고학번 선배가 말리고 난 뒤에야 멈췄다. A씨를 폭행하던 선배는 “오늘의 여우주연상”이라며 박수를 치고 즐거워했다. A씨는 “집에 와서 보니 등에 피가 나고 빨갛게 긁힌 상처들이 잔뜩 나 있었다”고 했다. 선배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연기였던 거 알지? 애들 추억 남겨준 거야”라고 했다.
A씨가 글을 올린 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피해자 B씨가 본인 실명을 공개하며 글을 게시했다. B씨는 자신을 “광덕공원 강간 몰카 사건의 (다른) 피해자”라고 밝히며 신입생 오티에서 겪었던 성희롱 피해를 전했다.
B씨가 속했던 오티 조의 선배들은 여학생들에게 괴상한 복장을 강요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히고 페트병 윗부분을 잘라 성기 가까이에 넣게 했다. 마치 남자의 성기가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B씨는 “페트병 때문에 성기 부분이 긁히기도 하고 굉장히 따가웠다”며 “그걸 시킨 이유는 ‘웃겨서’ ‘재밌으니까’였다”고 설명했다.
선배들의 성희롱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B씨에게 개인기를 시키던 한 고학번 선배가 일본 야한 동영상에 나오는 배우의 신음과 대사를 흉내 내라고 했다. B씨는 “내가 내뱉고 있는 단어가 어떤 뜻이고 어떤 상황에 쓰이는 말인지 다 알고서도 잘 모르는 남자 앞에서 무릎 꿇고 해야 했다”며 “그 선배가 만족할 때까지 흉내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후 B씨는 선배들 연락을 받고 A씨가 강간 몰카를 당했던 광덕공원에 불려 나갔다. B씨가 도착했을 때 A씨 비명이 멀리서 들렸다. 이후 A씨와 폭행을 가한 남자 선배가 B씨가 있는 곳으로 왔다. A씨는 공포에 질려 울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 선배는 “니가 울면 내가 뭐가 되냐, XX”이라며 A씨에게 겁을 줬다. 그러다 돌연 B씨에게 “너 늦게 왔지? 지각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며 B씨 팔을 잡아서 어딘가로 끌고 가려 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B씨는 결국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B씨가 한참을 울고 있자 다른 선배가 B씨 얼굴을 강제로 들어 올려 “서프라이즈”라며 동영상을 찍었다. B씨는 “그 선배 휴대폰에 내가 울고 있는 동영상이 아직 있을 것”이라며 “실명으로 글을 올린 이유는 내 동기나 후배들이 겪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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