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병우(51)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축소·은폐하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 등으로 지난해 4월 재판에 넘겨진 지 311일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는 22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우 전 수석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33차 공판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은 “표적수사이자 정치적 보복”이라며 “구형이 지나치다”고 반발했다.
이날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받은 총 9개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인정했다. 여러 혐의를 놓고 유죄와 무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우 전 수석은 끝내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혐의는 크게 △직권남용 △특별감찰관법 위반 △직무유기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나뉜다.
직권남용
재판부는 먼저 CJ E&M이 고발 대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에도 우 전 수석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관계자를 시켜 검찰에 고발하는 의견을 내게 한 것을 유죄로 인정했다.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23일 열린 공판에서 “우 전 수석이 2014년 CJ E&M에 대한 공정위 조사 결과에 대해 검찰 고발을 요구했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김재중 당시 공정위 국장은 우 전 비서관 요구대로 2014년 12월 열린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CJ E&M에 대한 고발 의견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신영선 당시 공정위 사무처장으로부터 CJ E&M 고발 조치가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어떻게든 고발이 되도록 했다”며 “신 전 사무처장이 민정수석이었던 피고인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불이익받을 것을 의식해 어쩔 수 없이 고발 의견을 진술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2016년 상반기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문체부 공무원 7명을 좌천성 인사토록 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체부 내 파벌 문제나 인사 특혜 의혹이 있었던 만큼 이를 바로잡으려는 조치였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이 대한체육회와 전국 28개 K스포츠클럽에 실태 점검 준비를 하게 한 것 역시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또 “민정수석실에서 K스포츠클럽의 적정성을 조사하는 게 법령상 허용 되지 않는다고 볼 근거는 없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점검 지시가 최순실이 운영했던 K재단과 더블루K를 K스포츠클럽 사업에 참여시켜 이익 취하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피고인이 알았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별감찰관법 위반
재판부는 2016년 7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전 수석을 감찰하려 하자 이를 방해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당시 우 전 수석은 장모의 가족회사 정강 횡령 의혹 등을 받고 있었다. 이 전 특별감찰관은 지난해 11월 27일 우 전 수석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민정수석실로부터 감찰이 불편하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감찰 사실을 알게 되자 즉시 특별감찰관보에 항의해 현장조사가 중단됐고, 조사 나간 특별감찰관실 파견 경찰들에게 진상 조사를 벌여 검찰 내사까지 시키는 등 (피고인이) 노골적으로 방해했다”며 “그 결과 제대로 된 감찰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직무유기
재판부는 안종범(59) 전 정책조정수석과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비위를 인지하고도 감찰 직무를 유기한 혐의 역시 “국정농단 사태를 묵인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상황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이 늦어도 2016년 7월 이후부터 안 전 수석과 최씨의 비위 행위를 충분히 인식하거나 의심할 만한 명백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진상을 파악하거나 안 전 수석을 전혀 감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형법상 직무유기는 구체적인 본인의 직무가 있는데도 수행하지 않아 국가 기능이 저해되고 국민에게 피해를 초래할 경우 성립된다”며 “피고인의 직무 방임으로 국가 혼란이 더욱 악화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반
국회 국정감사에 정당한 이유 없이 증인으로 나가지 않은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우 전 수석은 2016년 10월 21일 예정됐던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 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을 요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나오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시 우 전 수석은 처가의 강남 부동산 매매와 아들의 병역특혜 의혹, 가족 회사 자금 유용 등의 개인 비위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우 전 수석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국감에 나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에 대한 증인 출석 의결이 적법하게 이뤄졌고 증인 출석 요구서도 적법하게 송달됐다”며 “출석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 22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국조특위)에서 허위증언한 것과 지난해 1월 9일 국조특위에 출석하지 않은 것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허위 증언에 대한 국회의 고발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김성태 국회 특위 위원장이 법적 근거 없이 고발을 위임받은 것이라 적법하지 않다”고 했다.
또 “국조특위에 불출석한 것 역시 위원장에게 출석 여부를 위임하는 것은 법률상 근거가 없어 허용이 안 된다”며 “적법한 국회의 증인 출석 요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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