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이후 ‘봄’이 오려면… 결국 ‘미국’·‘비핵화’에 달렸다

Է:2018-02-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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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일에 “평창 이후 찾아올 봄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과 회담하며 ‘평창 이후’와 ‘봄’을 강조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대화가 한반도 평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문 대통령이 기다리는 ‘봄’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남북 교류·협력이 봄이었다. 남과 북의 의지로 계절을 바꿀 수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입춘’ 같은 역할을 했다. 지금 기다리는 봄은 훨씬 복잡해졌다. 남과 북을 넘어서는 고차원 방정식이 충족돼야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수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10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 초청에 즉답을 내놓지 않은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김여정은 청와대를 찾아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의향이 있다. 북에 와 달라”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 답변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였다. 곱씹어보면 청와대가 아주 많이 고민해 준비한 대답임을 알 수 있다.

“여건을 만들자”와 “성사시켜 나가자”는 각각 미국과 북한을 향해 한 말이었다. ‘성사시키자’는 말로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의사가 있음을 북에 전하면서 ‘여건’을 덧붙여 미국을 제쳐놓고 하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담았다. 평창 이후의 봄은 남과 북이 원한다고 찾아오는 게 아님을 이 답변이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단순한 ‘남북 교류·협력’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여건을 만들려 하고 있다. 플레이어가 예전보다 크게 늘었고 그들의 개입 수위도 매우 높아졌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미국이다. 전쟁 일보직전까지 긴장이 고조됐던 북한과 미국 사이에 지금 문 대통령이 섰다. 양측은 ‘비핵화’ 문제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과 ‘비핵화’. 평창 이후 봄이 찾아오는 방정식을 풀려면 이 두 가지 변수를 다뤄야 한다.


◇ 북·미 대화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북한 대표단의 방한으로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 및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나가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에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이 발언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갖춰져야 할 ‘여건’을 제시한 거였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가려면 미국의 입장이 중요해졌고, 미국이 남북 화해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려면 북·미 관계가 개선돼야 하니,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좀 더 전향적으로 임하라는 주문이었다.

‘미국 변수’는 평창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서 단적으로 확인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미국을 대표해 한국에 왔으면서 한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의식한 게 분명해 보였다.

펜스 부통령은 청와대의 ‘끈질긴’ 설득에도 미국 선수단과의 저녁 약속을 이유로 불참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를 5분이나마 리셉션장에 나타나게 한 건 문 대통령이었다. 포토세션만 갖고 떠나려는 그에게 문 대통령은 “그래도 친구들을 보고 가시라”고 제안했고, 펜스는 그제야 리셉션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간극을 좁히려 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의 옆구리를 찔러 김영남과 조우케 하고 북한을 향해선 미국의 전향적 대화를 주문하며 ‘여건’을 조성해가는 중이다. 이에 미 백악관은 11일 “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회담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북한의 방북 초청이 중요한 군사동맹인 한국과 미국을 분열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비핵화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청와대 회동은 약 2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접견과 오찬이 이어졌다. 많은 대화를 나눴을 이 자리에서 ‘비핵화’는 별로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결과를 전한 청와대 측은 “오늘은 북·미 간의 대화 중요성에 대해 주로 얘기했다”고만 답했다.

이처럼 ‘비핵화’는 남과 북 사이에 대단히 민감한 용어가 됐다. 북한은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고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못 박았다. 첫 만남부터 비핵화를 꺼내 들 경우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펜스 미 부통령은 사흘간의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북한의 핵 포기 압박을 위한 한국·미국·일본의 ‘3국 공조'에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용기(공군 2호기)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경제적·외교적으로 북한을 계속 고립시킬 필요성에 대해 3국은 빛도 샐 틈 없이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북한이 핵 야욕을 버리도록 압박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이뤄져야만 할 일들을 계속할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대북 압박 캠페인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핵화’는 아직 북한과 대놓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것이면서 미국과는 공동보조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이중적인 이슈가 됐다.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는 말처럼 절묘하게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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