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끝)무임금 착취, 대책 없나
구조된 뒤에도 수수방관
사회적으로 방치하다시피
美선 국적 불문 체계적 지원
제대로 처벌할 특별법 필요
국가 차원 시스템 급선무
일종의 인신매매 분명한데
호의로 착각… 착취 정당화
가해자들 인식부터 변해야
“현대판 노예 사건은 지금도 진행 중인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소홀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문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피해자 구조가 느리고, 제대로 된 사후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구조된 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방치돼 ‘차라리 노예 시절이 나았다’고 푸념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게 현실”이라고도 했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조 소장을 만났다. 그는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수년째 노예 사건 피해자 구조와 지원 활동에 나서왔다.
조 소장은 노예 피해자 가운데 자신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기 구조를 위한 노력과 구조 이후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지원이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 소장은 “선진국의 경우 현대판 노예 사건을 심각한 인권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체계적 지원을 받아 사회에 정착하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제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자들의 경우 정상적 환경에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조 후에도 개인 위생관리 등 자기관리는 물론 가사활동이나 일상생활 등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신안군 염전노예 피해자들 중에서도 구조 후 사회생활 부적응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 노동부에서 노예 사건 피해자에게 국적을 불문하고 응급 임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고 미지급 임금도 대신 회수해준다. 직업기술 훈련과 취업 연계, 가해자에 대한 민·형사소송 등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한다.
피해자들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학대를 받아 건강관리가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발견된 여러 사례에서도 피해자들은 “일을 하다 다치거나 구타를 당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증언을 쏟아냈었다. 조 소장은 “특히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심리치료 등 신체적·정신적 치료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의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대판 노예사건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직접적인 폭행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단순 임금체불 사건으로 수사가 이뤄진다”고 했다. 강력사건이 아닌 노동문제로 수사나 조사가 진행되다보니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근로감독관이 초기 진술을 받는 경우가 많고, 진술조력인의 지원도 없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처벌할 근거가 미흡하고, 장애가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니 노예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다.
조 소장은 “노예 사건은 피해자의 일생을 앗아가는 범죄라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일종의 인신매매 범죄로 보고 사건을 다룰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 소장은 또 “가해자들은 항상 ‘먹여주고 재워줬다’고 항변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돌봐주기만 하면 무조건 선행이고 정당하다는 인식이 아직 지역사회에 남아 있는 것 같다”며 “현대판 노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지적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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