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로나 시가지를 걷다보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와 마주치게 된다. 많은 경우 기다란 벤치 중간에 이를 양분하는 ‘팔걸이’가 설치돼 있다. 말 그대로 팔을 올려놓거나 여럿이 나눠 앉도록 구분하는 용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디자인의 가장 큰 목적은 노숙인이 벤치에 누워 자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영국 남부 도시 본머스의 벤치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본머스 시의회는 노숙인이 벤치에 누워 자는 것을 막기 위해 3650파운드(약 551만원)을 들여 일일이 팔걸이를 설치했다. 그런데 5일(현지시간) 밤부터 작업을 시작해 이를 모두 제거했다. 시 예산으로 설치했던 팔걸이를 역시 시 예산으로 치운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6일 오전 본머스의 공공장소 벤치에서 ‘노숙 방지용 팔걸이’가 모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제거된 팔걸이는 당초 시의회가 의결해 설치했던 벤치 28개에 달려 있던 것이었다. 이를 제거했다는 건 설치 당시의 정책 결정을 정반대로 뒤집었다는 뜻이다.
시 당국은 팔걸이 제거 작업 영상을 유튜브에도 올렸다. 그러면서 “노숙인이나 행려병자 등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시의회와 협업 중인 비영리단체 ‘세컨드 찬스’의 셰리 모리스는 “팔걸이가 오전 4시쯤 제거되는 것을 봤다는 몇몇 노숙인을 만났다”며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시의회가 그들의 실수를 인정한 것은 매우 용감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영국에선 노숙 방지 팔걸이가 “비인간적”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힙합가수 프로페서 그린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시위에 나서며 철거를 요구했다. 2만3000여명이 팔걸이를 없애라는 청원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린은 지난해 노숙인를 다룬 BBC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다.

노숙인 문제와 관련해 벤치 팔걸이는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곤 한다. 한쪽에서는 노숙인이 벤치에 누워 자면 미관상 좋지 않고 평온한 쉼터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며 팔걸이 설치에 찬성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법 취침 경고문구를 내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숙을 막을 수 있고, 겨울철 동사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기능적으로 불필요하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벤치 팔걸이를 설치하는 건 ‘노숙인 추방’에만 목적을 둔 행정편의주의라고 비판한다.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근하는 시각부터 잘못돼 있다는 것이다. 노숙인보다 미관과 편의를 우선하는 발상이어서 이런 접근법으로는 노숙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말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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