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생리대 바우처’ 도입… ‘깔창 생리대’ 논란이 만든 복지

Է:2017-12-26 14:29
:2017-12-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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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사회적 논란이 됐던 ‘깔창 생리대’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성 청소년에게 보건 위생에 필수적인 물품을 지원할 근거 규정이 마련됐다. 지원은 대통령령에 정한 기준과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여성가족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생리대 바우처’를 도입하기로 했다. 청소년들이 생리대 지원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정서적 불편을 최소화하고, 개인별로 다른 선호제품을 골라서 쓸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전국에서 약 15만명이 바우처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깔창 생리대’ 논란이 만들어낸 ‘청소년복지지원법’

지난해 6월 위생용품업체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한 직후 국민일보는 저소득층 소녀들의 실태를 보도했다. 생리대가 너무 비싸서 신발 깔창, 두루마리 휴지, 수건 등을 대신 사용한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그리고 1년5개월 만에 ‘깔창 생리대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저소득층 소녀들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준 깔창 생리대 논란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부당하게 비싼 생리대 가격을 정부가 규제하라는 주문이 터져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생리대 가격의 적정성을 따져보기 위해 제조업체 직권 조사를 벌였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생리대 지원 사업에 나섰다.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기부’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 임시적인 조치였다. 지원이 지속되려면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필요했고, 그러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했다.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깔창 생리대 사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저소득층 소녀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국가가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사진=국민의당 김삼화 의원


하지만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성별 특성을 반영한 시책 수립 부분만 개정돼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물품 지원 사업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1년이 더 지난 11월 24일 국회는 여성가족부를 생리대 지원 사업의 주체로 하는 법안을 마침내 통과시켰다. 김 의원은 “정부 재정으로 여성 청소년에게 안정적인 위생용품 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밝혔다. 예산 확보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청소년의 건강권 보호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생리대 지원 사업 어떻게 달라지나?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은 12월 12일자로 공포됐다. 6개월 경과기간을 거처 2018년 6월 13일부터 시행된다. 기획재정부는 2018년 생리대 지원 예산을 6개월분만 반영해 31억5000만원을 책정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에서 30억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여가부는 보건복지부에서 올해 구입해둔 현물(생리대)을 2018년 상반기에 먼저 지원하고 하반기에 바우처 시스템을 도입해 31억5000만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여가부 조혜승 사무관은 26일 “청소년이 생리대 신청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정서적 불편을 해소하고 개인이 희망하는 생리대 구매가 가능하도록 전자바우처 시스템을 통한 지원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여가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전자바우처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하반기부터 바우처 카드를 활용해 생리대 구매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전자 바우처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카드 형태로 발급되는 사회 서비스 이용권이다. 바우처 카드로 결제하면 정부가 나중에 비용을 카드사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지원대상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대상, 법정차상위대상자와 한부모가족지원법에 해당하는 중위소득50% 이하(4인 가족기준, 2,333,690원)가구의 만 11~18세 여성청소년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 자격 요건만 충족되도 바우처 사업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바우처 사업은 지자체와 협력해 진행한다. 대상자가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시·군·구 담당자가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을 통해 수급자격을 확인한 후 국민행복카드를 발급한다. 이를 받고나면 주민센터를 추가로 방문할 필요 없이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생리대를 구매할 수 있다.

바우처가 도입되면 지난해 일부 지자체에서 논란이 된 생리대 신청 방법과 전달 방식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자체에서 선택한 생리대 제품을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 써야 했던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바우처 지원에서 빠지는 사각지대 청소년을 위한 지원도 계속된다. 여가부는 청소년쉼터와 학교 밖 지원센터 등 관련 시설에 위생용품을 비치해 지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서 사업이 이관되고 지원방식 및 지원체계 등이 변경되는 첫 해이므로 생리대가 심리적 불편 없이 청소년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소녀들에게 ‘안전’과 ‘선택권’을

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해온 사회적기업과 개인 후원자들도 이번 법안 통과를 반기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는 국내 생리대 10종에서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수조사 결과 “시판 생리대 중 인체에 유해하다고 볼만한 제품은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래도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생리대가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도 지원돼 논란이 일었다. 일부 지자체는 생리대 지원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이미 지급됐던 생리대를 회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유해물질 논란이 다시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생리대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체용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면생리대와 탐폰에 이어 체내 삽입형 생리용품인 생리컵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식약처는 지난 7일 생리컵 ‘페미사이클’의 수입과 판매를 허가했다. 국내에서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구매하기 어려웠던 생리컵이 시판되면서 생리대 지원 대상인 청소년에게도 제품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4월 여성 1028명을 대상으로 ‘여성 생리용품 사용실태와 생리컵에 대한 인식·수요 조사’를 벌인 결과 여성들은 41.4%가 생리컵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10∼20대는 생리컵 인지도가 61%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크게 높았다.

국내 최초로 생리컵 품목허가를 받은 사회적기업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우리가 1년간 지원한 청소년 400명을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각각 선호하는 제품과 사이즈가 달랐다. 어떤 아이는 일회용 생리대의 어떤 브랜드를 써도 피부 짓무름이 심해 데이터의 표본을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선호하는 경향도 달랐다”고 말했다. 이어 “월경용품만큼은 다른 지원물품과 다르게 운영돼야 한다. 사람마다 월경혈이 다르고 피부 예민함에 차이가 있어서 개인적 성향과 신체 상태에 따라 직접 원하는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혀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경기도 고양, 파주 지역에서 2개월에 한 번씩 생리대를 청소년들에게 후원하고 있는 회사원 권청기(51)씨는 “청소년들이 새 법을 통해 보호받게 돼 기쁘다”면서도 “아직도 생리대가 없어 학교를 결석하고 속옷 없이 견뎌내는 아이들이 많다. 일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지원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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