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경택 감독님이 진짜 이 작품을 찍으신대?”
영화 ‘희생부활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배우 김해숙은 이런 질문을 내뱉었단다. 그만큼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비현실성은 기존 곽경택(51) 감독의 스타일과는 한참 이질적인 것이었다. 감독 본인으로서도 꽤나 힘겨운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후회투성이죠 뭐.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분명히 믹싱할 때는 괜찮았는데….”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경택 감독은 솔직 담백한 자기 고백으로 운을 뗐다. 그는 “들어낸 장면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아 연결의 힘이 빠진 부분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더라”고 털어놨다.
“기획 단계에서 목덜미에 팍 꽂힌 걱정은 ‘닥터K’(1999) 때 기억이었어요. 미스터리 스릴러였는데, 당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이번에도 ‘희생부활자를 하는 게 맞나. 도전이랍시고 했다가 이도저도 안 되는 거 아닌가. 남들이 잘한다고 인정해주는 거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 고민을 하다 오기가 생겼어요. ‘편한 건 재미없잖아’라는 생각에 하기로 마음먹었죠.”
영화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뒤 복수를 위해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희생부활자(RV·Resurrected Victims)라는 초현실적 소재를 다룬다. 오토바이 강도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던 엄마 명숙(김해숙)이 7년 만에 돌아와 검사 아들 진홍(김래원)을 공격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연기자들이 보여준 열연은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김해숙 선생님의 연기는 화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더군요. 혹시라도 영화에 대한 혹평이 나온다면 내가 혼날 구석이 많지, 연기자들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겠다 싶었죠. 그 지점만큼은 다행스럽습니다.”
영화 ‘해바라기’(2006), 드라마 ‘천일의 약속’(SBS·2011)에서 모자지간으로 호흡한 김해숙과 김래원을 또 다시 엄마와 아들로 캐스팅한 데 대한 부담이 없지 않았다. 김래원 출연이 먼저 결정된 상태에서 엄마 역을 놓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이 역할은 김해숙 아닌 다른 배우가 소화할 수 없겠다”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래원이는 정말 어려운 연기를 해줬어요. 계속 당황하고 놀라고 힘들어 해야 했죠. 특히 고시 합격신 촬영 때 연습을 엄청나게 하기에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더니 ‘웃는 장면이 이거밖에 없지 않냐’더군요. 되게 미안했죠(웃음). 극 중 엄마는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줘요. 내 자식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모성을 지닌 엄마의 모습부터 감정이 배제된 복수의 화신의 모습까지 있죠. 김해숙 선생님이 잘 표현해주셔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희생부활자’의 러닝타임은 91분으로, 2시간 안팎의 최근 추세에 비추어 다소 짧은 분량이다. 곽경택 감독은 “원작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몰입감과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 나머지는 최대한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희생부활자가 세상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은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한강에서 누가 죽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대사나 검찰·경찰·국정원 세 수사기관의 갈등을 넣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죠.”

낯선 스릴러로 야심차게 문을 여는데 그 끄트머리에는 모성애라는 익숙한 주제 의식이 깔려있다. 곽경택 감독은 “모자지간이 아닌 다른 관계로 설정돼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며 “원작과 결말은 다르지만 그 포인트만큼은 살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시사회 이후 뒤풀이 회식 자리에서 성동일 선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러더라고요. 죽었다 살아나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모성으로 끝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라고요(웃음).”
곽경택 감독은 “평소 나는 사회정의나 올바른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찍고 싶은 영화만 들고 뛰어다니는 스타일”이라며 “그런데 이번 영화는 어떻게든 법 복수 용서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용서의 가치가 없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메시지로 결말을 맺었다”고 말했다.
‘억수탕’(1997)으로 장편 연출을 시작한 곽경택 감독은 ‘친구’(2001) ‘똥개’(2003) ‘태풍’(2005) ‘극비수사’(2015) 등 현실에 발붙인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 왔다. 흥행 면에서 부침이 있을지언정 영화에 대한 그의 뚝심은 흔들린 적이 없다. “두 편을 연달아 망하면 충무로에서 아웃이거든요. 저는 다행히 ‘친구’가 잘 돼서 아직까지 감독을 하고 있죠(웃음).”

곽경택 감독은 “20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저런 곡절을 겪었다”며 “그렇지만 ‘실패는 친구’라는 마음만큼은 놓지 않고 있다. 실패를 무서워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항상 실패할 각오를 하고 뛰어들되, 실패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열심히 달린다”고 얘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감독들이 있잖아요. 그 중에는 저보다 상업적인 면에서 더 잘 나가는 감독도 있었을 테죠. 근데 또래 감독들이 몇 명 남지 않았어요. 그나마 제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남들보다 덜 가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곽경택 감독은 늘 아이디어 수첩을 챙겨가지고 다닌다. 흥미로운 이야기나 사건을 접할 때마다 수시로 메모하기 위해서다. 아마도 그건 새로움을 향한 치열한 고민과 갈망 때문이리라. 그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다. 그게 없으면 창작자로서의 기능은 다하는 것이다. 내게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라야 관객에게도 소개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영화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을 하겠다는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어요. 대신 폼으로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팀플레이가 중요한 일이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감내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거든요. 그저 멋있어 보여서 이 바닥에 들어온다면 백전백패일 겁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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