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오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 주무십시오”.
군대 후임병이 선임병에게 건네는 대화가 아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야신’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고 아들은 김정준 전 한화 코치다. 유년 시절 엄한 아버지가 어려웠던 김 전 코치는 김 전 감독에게 이 말 세 마디만 했다고 한다.
김 전 코치에게 김 전 감독은 단순한 아버지 이상으로 특별하다. 세 가지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김 전 코치는 아버지 김 전 감독을 “하나는 아버지로, 다른 하나는 야구계 선배로, 또 다른 하나는 조직의 리더인 감독으로 바라본다”고 밝혔다. 운명으로 엮어진 부자관계 뿐 아니라 야구계 선배로서 존경하고 배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같은 팀에서 세 번(LG 트윈스·SK 와이번스·한화)이나 함께 일하면서 감독이라는 선수단의 리더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김 전 코치의 이런 인식은 인터뷰 때도 연신 김 전 감독을 “감독님”으로 호칭하는데서 은연 중 드러났다.
‘야신’의 아들로서 살아온 김 전 코치는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창시절 충암중-충암고에 진학해 아버지께서 충암고 감독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이 나의 스승이 됐다. 그래서 ‘아버지의 제자들에게 배우는데 자식인 내가 못하면 아버지가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생각했다”며 “아버지가 세워놓은 기준이 곧 나의 기준이 됐다. 나는 능력이 없어 너무 힘들었고 선수 때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 거 같다”고 회상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2년 LG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김 전 코치는 통산 5경기에 나서 타율 0.143(14타수 2안타)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1년 만에 방출됐다. 입단 당시 김 전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선수생활은 짧았지만 LG에서 전력분석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남다른 성공을 거뒀다. 김 전 코치는 “이 자리에 있는 건 당연히 아버지가 근간이다. 태어나자마자 야구공이 옆에 있었고 야구에 남들보다 한 발 가까이 있었다”며 “김성근 감독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야구를 만나지 않았을 거고 남들보다 깊게 들어가는 환경 속에 살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전 감독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김 전 코치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었다. 김 전 코치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을 가끔 던진다. 그래도 밑바닥에서부터 공 줍고 장비 챙기면서 열심히 해 올라왔고 야구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생각을 가졌다”면서 “해설위원을 하면서 대중에 노출되면서 ‘김성근 감독 아들’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그래도 김 전 코치는 야구로 아버지를 도울 수 있었다. 김 전 코치는 “선수 은퇴 후 아버지께 해드릴게 없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지도자로서 우승 경험이 없으셔서 만화 같은 일이지만 에이스가 돼 우승을 돕는 상상도 했다”면서 “아버지 감독 커리어에서 5번(2002년 LG, 07·08·09·10년 SK) 한국시리즈를 가시고 그중 3번 우승했는데 항상 함께했다는 자부심은 있다”고 말했다.
가장 감격적인 순간을 김 전 코치는 0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 때로 회상한다. “07년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 당시 이만수 수석코치께서 구장을 찾은 아들과 포옹을 나눴는데 정말 부러웠다. 저는 감독님(아버님) 하고 악수 밖에 못했는데 포옹의 시간은 지나갔고 너무 아쉬웠다”며 “그리고 나서 08년 두 번째 우승 때는 감독님과 진한 포옹을 했다. 잊지 못할 순간이다”고 밝혔다.
김 전 감독이 한화를 떠나면서 김 전 코치도 팀을 나왔다. 지난 시즌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와의 논란에 대해서는 “로저스를 지도한 적 없고 불화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김 전 코치는 “아버지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 정말 몸을 낮춰 왔는데 아버지와 연관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김 전 코치는 올 시즌 김 전 감독이 감독직을 내려놓은 직후 “제가 이제 아들 노릇 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지난 8월엔 부자가 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다. 일본으로 가서 한신고시엔구장을 찾아 고시엔(일본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을 보고 전설적 야구선수 출신인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을 만나 야구철학을 공유하기도 했다.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꾸준하게 빼먹지 않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가장 기본에서 김 전 감독과 오 회장은 일맥상통했다고 한다. 김 전 코치는 매일 김 전 감독에게 안부 전화를 빼놓지 않고 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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