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다. 최근에 문방구나 친구 집에서 작은 물건을 몰래 집어오는 등 갑자기 도벽이 생겼다. C의 부모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C의 가정은 맞벌이 가정이어서 C는 주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C의 할머니도 손녀에게 정성을 들였고, C도 할머니를 좋아하고 따랐다. 하지만 할머니는 며느리에게는 매운 시집살이를 시켰다. C의 엄마는 원래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자기 주장을 못하는 편이어서 시어머니로부터 일방적인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속내를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C의 엄마가 몇년 전 암 선고를 받았다. 그 순간 지난 세월의 설움이 밀물처럼 몰려왔고, 자신이 암에 걸린 것도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반란이 시작됐다. 시댁 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고,아예 시댁과의 왕래는 커녕 인연마저 끊으려했다.
병원에 온 C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상담 후 가끔 할머니를 만날 수 있게 했다. C는 다소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사준 가방은 엄마가 볼까봐 장 속 깊은 곳에 숨겨 두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엄마는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식을 위해 엄마가 못할 일이 없고, 따지고 보면 자신의 병이 시어머니 탓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놓기만 했던 자신의 성격이 더욱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무엇보다 C에게서 할머니 사랑을 받을 기회를 박탈할 권리가 자신에게는 없다는 데에도 생각이 미쳤다. 역시 모성은 위대했다. 결국 C 엄마는 시어머니와 화해하기 시작했고,다시 할머니와 왕래를 시작했다. C가 장 속에 감춰 두었던 ‘할머니 가방’을 꺼내던 날, C의 도벽도 사라졌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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