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통령을 형상화한 대형 가면에 ‘그 입 좀 다물라’는 듯 반창고가 붙여져 있다. 2015년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조롱해 시민들이 가면을 쓰고 축제하듯 시위에 참가했던 것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역시 임옥상(67)이다.
민중미술의 대표주자 그가 돌아왔다. 2000년대 들어 거리에서 공공미술을 펼쳤던 임옥상이 ‘화이트 큐브’ 전시를 연 것은 6년 만이다. 지난 11일 개인전 ‘바람 일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1층을 가득 채운 국내외 정치지도자의 가면들은 풍자가 어떤 에둘림도 없이 직설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얼굴엔 ‘보통 사람’이란 글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검은 선글라스엔 ‘유신’ 두 글자가 박혀 있는 식이다.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 탓에 마치 1980년대 민중미술 전시를 보는 것 같다고 했더니 “정부가 예술를 통제하려했으니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용산화재 참사’는 핏빛 뚝뚝 듣는 붉은색 스케치로, 박근혜 정부 때의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은 목탄을 사용해 검은 스케치로 장면 장면들을 조각보처럼 이어붙였다. 현실이 폭압적이라 리얼하게 그린 것 자체가 구호처럼 선명하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민중미술의 기법은 진화하지 않았다는 인상도 들었다. 이를테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목탄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그는 “(달라진 게 없다는 데)동의하지 못하겠다. 보수 정부 10년이 이어지다보니 과거의 상황과 데자뷰(기시감)하는 느낌이 들어 그럴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에선 대형 가면도 그렇지만 ‘흙 회화’가 처음 등장했다면서 “흙에 대한 오마주 전시”라 자평했다.
“왜 디지털만 미디어(매체)라고 생각하느냐, 디지털 시대라 해서 그게 미술판을 독점하는 게 얼마나 우습냐. 아무도 쓰지 않은 흙을 , 제 나름대로 새로운 미디어로 만들어냈다”고 말할 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흙색 유화물감이 아닌 진짜 흙으로 그린 초상화와 풍경화다. 특히 북악산을 배경으로 광화문을 그린 흙 풍경화 3점은 그 스케일이 커서 한 점 한 점이 전시장의 각 벽면을 차지했다. 초가집 흙벽을 지을 때 흙과 짚으로 이개 듯, 팔뚝의 힘이 느껴지는 산세가 꿈틀거리듯 시원하다. 광화문 광장에는 무릉도원을 상징하는 분홍꽃이, 튀밥 같은 흰꽃이 각각 가득 차 있기도 하다.
80∼90년대 황토색을 사용한 인물 그림으로 유명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서는 거리 예술가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 인사동에서 4년간 ‘당신도 예술가’ 실험을 하며 공공미술에 눈떴지요. 사람들이 미술관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문외한은 아니며 그들도 미술에 목말라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공공미술 영역에서 늘 새 시도를 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공공미술 수주를 싹쓸이한다는 질시도 받는다. 청계천 ‘전태일기념상’을 비롯해 난지도 ‘하늘을 담는 그릇’, 창진동 친환경놀이터 등이 대표작이다. 인터뷰하는 중에도 연신 전화가 울려 그의 광폭 인맥을 실감케 했다.(사)흙과도시‧(사)세계문자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문자연구소는 14일부터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한 ‘서울로7017’에서 예술행사를 벌인다. 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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