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폐기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이 지시는 참모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해선 안 된다며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등이 트럼프를 막아섰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이번 주에 참모들과 한·미 FTA 폐기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언론에 공개했다. 로이터 통신은 허리케인 ‘하비’ 피해를 당한 텍사스주 휴스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폐기' 발언이 나오게 된 과정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폐기를 준비하라고 측근들에게 지시했는데,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 등 참모들이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한·미FTA를 폐기하면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에 경제적 긴장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백악관 참모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일본 상공을 지나가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국제 사회를 위협하는 시기에 자칫 한국 정부를 고립시킬 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반기를 들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또 한·미FTA가 폐기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미국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하라고 압박할 수 있지만, 한국이 거부하면 두 나라 사이에 무역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리 슈미트 미국기업연구소(AEI) 메릴린웨어센터 안보담당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한국의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 달리 친미 성향이 아닌데, 그를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를 유리한 방향으로 재협상하기 위해 협정 존속을 결정할 가능성도 있지만, 협정 폐기 준비가 상당히 진척됐으며 빠르면 이번 주 중 공식 폐기 절차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백악관 대변인실은 “논의가 진행중이지만 지금 시점에 발표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FTA 폐기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취임 이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폐기하려다 측근들과 산업계의 적극적인 로비 이후 마음을 바꿨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 멕시코의 협상 태도를 문제삼으며 NAFTA를 폐기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웬디 커틀러(사진)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최근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지금은 한국과 미국이 무역 갈등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미 FTA 체결 당시 미측 수석대표를 지냈던 커틀러 전 부대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양자 무역적자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불행하게도 한·미 FTA가 실패한 FTA 사례로 주목받았다”면서 “그러나 한·미 FTA는 두 나라의 기업과 노동자, 시민 모두에게 이익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FTA가 양국 경제에 미친 객관적인 영향을 분석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미국은 받아들여야 한다”며 “미국 무역적자는 한·미 FTA 탓이 아니라 거시경제 탓”이라고 진단했다.
또 “북한 미사일 위협이 점증하는 이때에 한·미 동맹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며 “한·미 FTA 재협상을 조심스레 다루지 않으면 민감한 시기에 양국 무역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한·미 간 무역갈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라며 “서로 상대의 관심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선의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 FTA는 강력한 한·미 동맹의 경제적 주춧돌이 됐다”며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두 나라 모두에 경제적 이익을 안겼으며 서로를 더욱 긴밀한 파트너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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